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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담요 게이트'에 까칠한 미국 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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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라 국제부 기자) ‘기사도 정신이냐, 바람둥이의 수작이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61)이 지난 10일 저녁 중국 퍼스트레이디 펑리위안 여사에게 담요를 덮어준 장면 때문에 온 언론이 떠들석합니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베이징 올림픽 수영경기장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축하 폭죽 공연 관람 중 옆자리에 있던 펑 여사의 어깨에 살포시 담요를 덮어줬는데요. 이 장면이 중국 관영 CCTV를 통해 중계되면서 중국 네티즌들은 ‘코트게이트(coat gate)’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자상한 남자친구가 여자친구 대하듯 했다는 겁니다. (정확히는 ‘담요 게이트’가 맞겠네요.) 펑 여사의 오른편에 있던 시진핑 주석은 당시 옆자리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대화하느라 이 장면을 못 봤습니다.

언론들의 평가는 엇갈렸습니다. 기사도 정신이라는 것과, 외교적인 결례를 범했다는 겁니다. 중국인들은 주로 “푸틴이 기사도 정신을 발휘했다”는 평가를 보냈고, 오히려 서구 언론 쪽에서는 아니꼬운 시선을 보냈습니다.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는 “러시아의 ‘돈 후앙(스페인 귀족 출신 바람둥이)’이 시 주석 부인에게 들이댔다”며 “돌싱이 된 지 얼마 안된 푸틴이 다른 나라 정상 부인에게 수작을 걸어 외교적 결례를 범했다”는 격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CCTV는 현재 관련 영상을 모두 삭제했지요.

사실 푸틴 대통령은 조금 억울할 것 같습니다. 펑 여사 말고도 ‘담요 매너’를 뽐낸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해 9월 러시아에서 열린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 땐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어깨에도 담요를 덮어준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30년간 살아온 부인 류드밀라 푸티나와 이혼한 지 3개월도 채 지나지 않은 때였습니다.

여자에 대한 남자의 매너, 기사도 정신이라면 미국이나 유럽 언론에서 오히려 더 관대한 반응을 보일 것 같은데, 담요 하나 덮어준 것 갖고 이렇게 ‘까칠한’ 평가를 내놓는 이유는 뭘까요.

최근 러시아와 중국과의 밀월 관계, 미국과 유럽의 대(對)러시아 제재 등 복잡한 외교판을 들여다보면 답이 보입니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두고 올 초부터 유럽과 미국은 러시아에 대해 몹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습니다. 몇 차례에 걸쳐 금융, 수출 품목 등을 제재했지만 푸틴 대통령은 뻣뻣한 자세를 고수하며 보란듯이 중국과의 관계를 더 끈끈히 만들어 갔습니다.

시 주석과 푸틴 대통령이 지난 2년간 10차례나 정상회담을 가졌으니 말입니다. 유럽은 러시아로부터 천연가스 석유 등을 수입하지 않겠다고 러시아를 압박해왔는데, 푸틴 대통령은 이번 APEC 회담 도중 시 주석과 ‘30년간 천연가스를 수출한다’는 계약서에 서명을 했습니다. 미국과 유럽 언론은 약이 오를 대로 올랐겠죠. 푸틴이 카메라 앞에서 미소를 띄우며 자상하게 담요를 덮어준 것 역시 펑 여사와 친분을 과시하려 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푸틴의 화려한 ‘여성 편력’도 이러한 비판의 근거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해 30년 간 결혼 생활을 이어온 아내 푸티나와 결별하고 ‘돌싱’이 됐습니다. 슬하에 20대 후반 두 딸이 있지만 두 사람의 파경 뒤에는 푸틴의 빈번한 외도가 있다는 게 정계의 분석입니다.

그도 그럴것이 그동안 미녀 스타들과 수없이 많은 염문설을 뿌려왔습니다. 리듬체조의 여왕인 알리나 카바예바(31), 미녀 스파이 안나 채프먼(31), 모델 출신 사진가 야나 라피코바(25)가 모두 숨겨둔 애인으로 물망에 올랐던 여인입니다.

사냥, 낚시, 승마 등을 즐기는 ‘만능 스포츠맨’ 푸틴은 최근에도 상의를 탈의하고 말을 타는 사진을 공개해 몸짱임을 과시했습니다. 한 나라의 수장이 하기엔 다소 도발적인 행동이 많았죠. 최근엔 푸틴의 입맛에 맞춘 신개념 아부까지 등장했는데요.

푸틴 대통령의 측근이자 러시아 하원 의원인 예레나 미줄라는 최근 “모든 러시아 여성에게 푸틴 대통령의 유전자(정자)를 우편으로 보내고, 그의 아이를 임신, 출산한 여성에게 특별 수당을 주자”는 황당한 주장을 펼쳤습니다. 우수한 유전자를 받은 아이에게 교육을 잘 시키면 장차 나라를 이끌어가 제 2의 인물들이 많아진다는 발칙한 상상입니다.

올해 외교 무대에서 항상 중앙에 서 있던 푸틴. 아무튼 이번 APEC에서도 세계 정상들을 다 제치고 뉴스의 중심에 서는 덴 성공한 것 같습니다. 중간선거 패배로 ‘레임덕’에 처한 오바마 대통령은 정상회담 때 껌을 씹다 걸려 구설에 올랐으니 말입니다. ‘껌’때문에 뉴스에 오르내리는 것보다야 다른 나라 영부인에게 들이대다 걸린 게 더 나은 모양새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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