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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19세기 '영국 철도 거품'이 재연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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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광진 중국전문기자) 중국 정부가 경기부양을 위해 최근 한 달새 대형 인프라 건설 프로젝트들을 잇따라 비준했습니다. 국가발전개혁위원회(발개위)가 10월16일부터 이달 5일까지 21일간 비준한 인프라 프로젝트의 투자 규모가 7000억 위안 (124조9000억원)에 달합니다. 16건의 철도 건설과 5건의 공항 건설에 총 6933억 7400만안 위안을 투입할 예정입니다.

중국 정부가 인프라 투자를 가속화하는 것은 둔화하고 있는 중국 경제의 회복을 앞당기기 위한 겁니다. 문제는 거품 가능성입니다. 중국 당국은 철도에 대한 투자를 낙후지역의 물류와 생활 개선을 위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아직도 다른 나라에 비해 철도와 도로 등 교통 인프라 수준이 뒤진 것을 근거로 내세웁니다. 부동산이나 과잉공급 업종으로 비판하는 철강 시멘트 등 제조업종에서 이뤄지는 투자와는 격이 다르다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철도 건설 거품은 19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갈 만큼 긴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영국의 철도 거품이 대표적입니다.

19세기 영국의 철도 거품과 지금의 중국 철도 붐의 유사성 여부를 따져볼 만합니다. 역사 만한 교과서가 없습니다. 영국에는 '철도왕 조지 허드슨'으로 불리는 인물이 있었습니다. 당시 첨단기술로 꼽히던 철도를 대중에게 적극 알려 블랙홀처럼 사회자금을 빨아들였던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신기술과 민간자본의 탐욕이 결합하자 거품은 금세 형성됐습니다.

중국이 이번에 철도 투자를 늘리면서 종전과는 다른 행보를 보이는 게 있습니다. 민간자본의 참여를 적극 유도하는 게 그것입니다. 지난 10월24일 리커창 중국 총리는 국무원 상무회의를 주재하면서 투융자시스템의 혁신을 강조하며 정부사회합작(PPP,Public—Private—Partnership) 방식을 적극 확산시키라고 주문했습니다.

국유기업이 독점해온 철도와 전력 등에 민간자본 참여를 적극 유도하고 나선 것도 이와 무관치 않습니다. 특히 국유기업 개혁의 카드로 내세우는 게 혼합소유제(민간 지분 참여)입니다. 민간에 경영권을 당장 넘기지는 않지만 그동안 민간이 참여하지 못했던 영역의 국유기업에도 민간이 지분참여를 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겁니다. 1997년 시작된 혼합소유제를 다시 적극 확산시키겠다는 게 시진핑 정부의 구상입니다.

철도 건설에 민간자본이 참여하는 점에서 19세기 영국 철도 거품을 떠올리게 합니다. 하지만 이제 철도는 민간자본가들을 탐욕에 눈 멀게 할 신기술이 아닙니다.그러나 고속철도가 있습니다.중국이 고속철도 투자에도 민간자본이 참여하는 PPP를 적용할지는 아직 분명치 않지만 그럴 경우 투자거품이 형성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중국의 철도 투자에 민간이 참여하지만 주도권은 정부가 갖고 있다는 점에서 영국의 철도 거품과 다릅니다. 당시엔 정부 개입이 거의 없어 같은 지역에 철도노선이 깔리는 중복 투자가 많았습니다. 중국의 철도 투자는 정부가 조정하기 때문에 중복투자 가능성은 낮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중국 철도 투자 러시에서 아직 영국 철도 거품의 그림자를 찾기는 힘들어 보입니다. 그러나 수요를 무시한 투자 러시 역시 거품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중국에 철도 투자 거품이 100% 없을 것이라고 속단하기에는 이릅니다.

다음은 공항 건설 러시에 따른 거품 형성입니다.

중국에선 주룽지가 총리 시절 비행기를 탔을 때 아래를 내려다보며 “공항이 하도 많아 어디에 내려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는 우스개소리가 나돌 만큼 공항 건설이 난립한 상황입니다. 특히 소형 공항의 경우 적자를 내는 곳이 80%에 이른다는 중국 언론의 보도도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최근 한달새 5개의 공항 건설 비준이 떨어진 겁니다.

중국에서는 이미 다양한 대형 경제 프로젝트와 연계한 공항 건설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중국 국무원(중앙정부)은 지난 9월에 발표한 장강(長江)경제벨트 종합 입체 교통 계획에서 상하이 국제공항 허브 건설을 가속화하고 장강 연안 도시의 공항을 2020년까지 26개 신설해 100개로 늘린다는 구상을 공개했습니다.

중국 북부에서는 베이징이 국제공항허브 육성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베이징시 관계자는 최근 중국청년보와의 인터뷰에서 베이징 신공항을 연내 착공해 2018년 가동한다는 목표를 세웠다고 전했습니다. 이 신공항은 2025년까지 7200만명, 장기적으로는 1억명까지의 여객을 수용할 수 있는 국제공항허브로 육성됩니다. 이를 위해 860억위안이 투입될 예정이다.

베이징의 다싱구와 허베이성의 랑팡시 사이에 세워질 신공항은 베이징의 소우두국제공항과 67km 떨어져 있습니다. 70km 범위내에 대형 국제공항이 두 개 들어서는 것은 전세계 어디에도 찾아보기 힘들다고 합니다. ”베이징 신공항과 소우두국제공항이 차별화 노력을 해야 한다.”(장궈화 국가발전개혁위원회 도시중심종합교통규획원장)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낙후된 서부지역 발전을 위해 서부 주요 도시에서도 국제공항허브 계획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쓰촨성 정부는 지난 9월 현대물류산업추진방안을 발표하고 청두를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에 이어 중국의 4번째 국제항공허브로 육성한다는 구상을 공개했습니다. 청두에 쐉류국제공항이 있는데 추가로 국제공항을 신설한다는 게 핵심입니다.

신 공항은 오는 12월에 착공해 2017년 가동한다는 계획입다. 또 중국민용항공국이 최근 시안에서 개최한 실크로드 경제벨트 국제항공운수포럼에 참가한 샨시성의 좡창싱 부성장은 시안을 국제항공허브로 육성겠다고 밝혔습니다. 민항국은 앞서 지난 7월엔 허난성 정부와 정저우경제종합실험구 건설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허난성의 정저우를 국제항공 화물허브로 키우는 데 협력하기로 했습니다.

중국 남부의 대표적인 국제공항인 광저우의 바이윈공항도 현재 제3활주로를 건설중입니다. 중국과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간 자유무역협정( FTA) 범위를 확대하는 업그레이드 협상이 내년말 타결을 목표로 진행되면서 광저우의 국제공항 허브 위상 강화가 탄력을 받고 있습니다.

중국의 경제성장으로 해외 관광객이 급증하는 등 공항 수요를 늘리는 건 맞습니다. 하지만 수요보다 공항의 공급이 더 많이 이뤄지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특히 고속철도의 경우 공항과 일정 부분 대체재 역할 하기도 합니다.

철도와 공항 건설 러시 소식에 중국 경기회복이 앞당겨질 것이라고 마냥 낙관만 할 수만은 없는 이유입니다. (끝)

오늘의 신문 - 2024.09.28(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