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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세계지리 오답문제' 피해자는 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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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리 편집부 기자) “해당 학생의 피해 구제에 최선을 다하고 기존 정답 처리된 학생은 불이익이 없도록 하겠다.”

황우여 교육부 장관이 지난 31일 수능 세계지리 출제 오류를 시인하며 회견에서 했던 말이다. 교육 당국은 이번 사태의 대상자를 세계지리 8번 문항을 맞은 자와 틀린 자로만 고려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이 간과하고 있는 또 다른 숨은 피해자가 있다. 바로 세계지리를 선택하지 않은 수험생들이다.

사실 8번 문항을 맞춘 학생들은 다소 혜택을 본 측면이 있다. 세계지리 1등급 기준은 48점이다. A 학생이 3점에 해당하는 8번 문항을 맞추고 2점에 해당하는 다른 문항을 틀렸다면 48점으로 1등급에 해당한다. 하지만 8번 문항을 전원 정답 처리한다면 전체 세계지리 수험생들의 점수가 전반적으로 올라가면서 1등급 컷도 상승하게 된다. 교육부가 출제 오류를 1년 전 수능 성적 발표 전에 시인했더라면 A 학생은 1등급이 아닌 2등급을 받았을 것이다.

이미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을 이러한 이유로 불합격 시킬 수는 없다. 하지만 세계지리를 선택하지 않아 점수에 변동이 없는 다른 학생들도 입시에서 자신도 모르게 피해를 봤다는 사실은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먼저 등급이 바뀌면 수시 최저 등급을 만족시키지 못하고 불합격 했을 학생이 생긴다. 수시모집에서 채우지 못한 정원은 정시모집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정시에서 합격했을지도 모르는 학생들은 기회를 놓친 것이다.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에서는 탐구영역에 백분위를 활용한 변환표준점수를 사용한다. 세계지리 백분위가 변한다면 각 학교에서 책정하는 변환표준점수 또한 변할 것이고 이로 인해 대학의 당락이 갈리는 경우도 생겼을 것이다.

또 다른 피해자는 비교내신을 적용받은 학생이다. 고려대, 서강대, 성균관대 등의 학교에서는 검정고시를 치른 학생이나 삼수 이상 학생에게는 비교내신을 적용한다. 이들은 지원자들의 수능점수 순위를 매긴 후 그들의 순위에 해당하는 내신점수를 부여받는다. 세계지리 점수가 변화하면 지원자들의 수능점수 순위도 달라지기 때문에 비교 내신 적용 학생들은 본인이 세계지리를 선택하지 않았더라도 내신 점수가 달라졌을 것이다.

대학 입시는 아주 근소한 점수 차이로 당락이 갈리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세계지리 8번 문항의 오류가 미친 영향은 오답자 1만8884명 뿐 만이 아니라 나비효과처럼 어마어마하다. 교육부가 1년 전 수능 성적표가 나오기 전에 오류를 시인했더라면 위의 피해자들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너무 늦은 시인이 빚어낸 사태다.

물론 일찍 시인했더라도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모든 학생이 3점이 오르게 되면
결국 세계지리 선택자들은 너무 많은 만점자들로 인해 표준점수가 낮아지면서 다른 과목을 선택한 학생들에 비해 피해를 봤을 것이다. 결국, 잘못 만든 문항 하나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수험생들의 몫이 된다. 교육부의 실수는 너무 많은 학생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세계지리 수능 오류 소송을 이끈 박대훈 강사는 “학생들의 성적이 정상분포를 보인다고 가정했을 때 등급이 바뀌는 학생은 교육부에서 추산하는 4,800명이 아니라 1만1111명 가량으로 더 많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잠재적 피해자까지 모두 구제할 순 없더라도 세계지리 8번 문항을 틀린 학생에 대한 구제책 마련이 시급하다.

수능이 열흘 앞으로 다가왔다. 학생을 울리는 수능이 또다시 반복되지 않길 바란다. (끝)

오늘의 신문 - 2024.11.11(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