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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뒷 얘기

미국 국방부가 캐시미어 사업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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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라 국제부 기자) 미국 해군 특수전사령부 산하의 씰(SEAL)은 1962년 1월 1일 존 F.케네디 대통령의 특명에 의해 창설된 특수부대입니다. 이중 SEAL-6는 깐깐한 대원 선발과 혹독한 훈련으로 악명(?)이 자자하죠. 이 부대는 쿠바 미사일 위기, 베트남전, 아프가니스탄 작전 등에 투입돼 미국 대테러리즘의 중심에서 활약해왔습니다.

유령도 벌벌 떨게 한다는 SEAL-6. 이들이 난데없이 최고급 의류 소재인 ‘캐시미어(cashmere)’ 사업에 뛰어 들었다고 합니다. 무슨 사연일까요?

캐시미어는 인도 북부, 네팔, 티베트, 이란 등에서 주로 납니다. 이 지역에서만 자라는 캐시미어 산양에서 털을 채취해 만든 섬유죠. 촉감이 부드럽고 보온성이 뛰어나 명품 브랜드의 겨울 의류에 주로 쓰입니다. 생산량이 많지 않아 가격도 높고요. 캐시미어의 3대 생산국은 몽골, 중국, 아프가니스탄입니다. 해발 4000m가 넘어 산소가 부족한 곳, 추운 날씨와 척박한 곳일수록 더 보온성이 뛰어나고 가느다란 캐시미어를 얻을 수 있다고 합니다.

미국은 2001년 9.11 테러 직후 탈레반 정권 소탕을 위해 아프가니스탄과 전쟁을 시작했고, 전쟁이 장기화 되면서 아프간산 캐시미어에 눈을 뜨게 됐습니다. 아프간에 살고 있는 캐시미어 산양은 700만 마리인데 이 중 30%만이 고급 섬유의 원료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죠.

명품 브랜드인 케이트스페이드는 2010년부터 아프간산 캐시미어를 사용하겠다고 선언했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쳤습니다. 드넓은 사막과 평야에 띠엄띠엄 흩어져 있는 아프간 산양들을 모아 산업화 한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습니다.

2012년 대테러 전쟁의 명분이 시들해질 무렵. 미국 국방부는 ‘캐시미어 특별팀’을 꾸렸습니다. 이탈리아 끼안띠 지역의 튼튼한 숫양을 콜로라도주립대 연구실에 보내 튼튼하고, 유순한 성격의 산양의 배아를 만들어 냈습니다. 이렇게 태어난 ‘슈퍼 산양’은 서아프가니스탄 곳곳에 흩어져 지난 6월 100마리의 새끼를 낳았습니다.

이제 판매 활로를 개발하는 일만 남았는데요. 이미 첫 테이프를 끊은 이들이 있습니다. 아프간에서 복무했던 두 명의 전직 군인이자 사업가들은 지난 6월 아프간 캐시미어 스타트업을 만들어 ‘세상 가장 위험한 곳에서 만들어진 가장 좋은 제품’을 홍보하고 나섰습니다.

이들이 만드는 건 식상한 스카프가 아닌 캐시미어 소재의 슬리퍼. ‘컴뱃 플립플랍’이라는 이름의 이 제품은 온라인 크라우드 펀딩으로 자금을 모아 양산에 성공했습니다. 지난달 인도 스카프 공장에 캐시미어를 납품하기 시작했고, 이달에는 생산품을 수출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이 생산한 스카프는 판매액의 절반 가량이 아프간 소녀들의 학자금으로 적립된다고 합니다.

아프간 전쟁으로 천문학적 국방 예산을 쓴 미국. 아프간 캐시미어 사업으로 까먹은 돈도 되찾고 폐허가 된 아프간 재건에도 도움을 줄 수 있을 지 지켜봐야겠습니다. (끝)

오늘의 신문 - 2024.05.18(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