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바로가기

뉴스인사이드

취재 뒷 얘기

골드만삭스가 M&A 협상장에서 좇겨난 이유

글자작게 글자크게 인쇄 목록으로

(좌동욱 증권부 기자) 자동차 부품 제조사인 대유에이텍과 글로벌 사모펀드(PEF) 씨티벤처캐피탈(CVC)은 지난달 하순 홍콩에서 극비리에 위니아만도 경영권 매매 협상을 진행했습니다.

KG그룹과 현대백화점이 각각 지난 3월과 8월 우선협상대상자가 된 이후에도 번번히 M&A가 무산됐던 탓에 협상장은 긴장감으로 팽배했다고 합니다. 협상이 무산될 경우 상당기간동안 재매각이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양측의 법률 재무 회계 자문사들이 총출동했습니다. 그런데 골드만삭스 관계자들은 협상장에 없었다고 합니다. 골드만삭스는 위니아만도의 매각 주관사입니다. 통상 대형 M&A에서 매각 주관사는 파는 쪽과 사는 쪽의 협상을 주도하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당시 협상은 매매 가격, 조건과 같은 핵심 내용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는 자리였습니다. 골드만삭스가 아시아 자본시장의 핵심 근거지인 홍콩에서 진행된 M&A 협상장에 동석조차 못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세계 최대 투자은행(IB)인 골드만삭스는 기업 경영권을 매매하는 중개인으로 매각가격을 극대화하는 데 장기를 갖고 있습니다. 구속력 있는 본입찰을 받은 후에도 경매호가식 협상(프로그레시브 딜)으로 값을 끌어올리는 게 주특기입니다. 최근 3년간 골드만삭스는 주요 대형 딜을 독식하다시피 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방식엔 단점도 있습니다. 시간이 많이 걸리는 데다, 신뢰와 평판을 중시하는 한국 정서와 맞지 않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게다가 매매 종결 가능성보다는 매각 가격 극대화를 추구할 가능성 때문에, 결과적으로 고객의 이익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결과를 나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위니아만도 매각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CVC는 지난 8월 현대백화점과 대유에이텍을 놓고 고심했습니다. 현대백화점은 가격이 상대적으로 높았지만, 대유에이텍은 인수 의지가 커 매매 종결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골드만삭스는 대유에이텍과 거래를 할 것처럼 주식매매계약서(SPA)까지 작성해 놓고, 가격 인상을 유도했습니다. 그리고는 현대백화점에게 단독 협상권을 줬습니다.

배신감을 느낀 대유에이텍은 ‘협상 채널’을 닫아버렸습니다. 처음부터 딜을 진지하게 보지 않았던 현대백화점은 “예상보다 M&A 시너지 효과가 없다”며 딜을 포기했습니다. 가격과 조건을 대폭 양보하지 않으면 인수하지 않겠다는 ‘으름장’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골드만삭스는 당시 ‘100억원대 임직원 위로금, 조직 개편과 인사는 노조와 협의한다’는 등 노조측 과도한 요구가 딜이 파기된 이유라고 설명했지만, 하지만 노조는 황당한 반응입니다. 향후 밀당(밀고 당기기)을 할 요량으로 협상용 카드를 제안한 바로 그날 현대백화점이 인수 포기 발표를 했다는 겁니다. 아예 인수할 생각이 없었다는 거죠.

한 투자은행(IB) 대표는 “사업 다각화를 노린 현대백화점은 향후에도 골드만삭스의 중요한 거래처가 될 수 있는 핵심 고객”이라며 “한국 시장을 떠날 CVC보다는 현대백화점을 보다 중시할 유혹에 빠질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위니아만도의 유일한 경쟁자였던 현대백화점이 빠지자, CVC의 협상력은 바닥으로 추락합니다. 게다가 CVC는 사모펀드 만기가 도래한 탓에 연내 매각을 마무리해야 하는 일정에 좇기고 있었습니다. 대유에이텍은 떵떵거리면서 유리한 가격과 조건을 받아낼 수 있었습니다.

전체 인수대금의 30%는 인수 후 2, 3년차에 매각측의 풋옵션 행사로 분할 지급한다는 유례없는 특혜 조건을 받아냈습니다. 당초 100억원대로 추산되는 임직원 위로금을 CVC 몫으로 돌렸습니다. 이를 감안한 전체 인수가격(1150억원)은 대유에이텍의 당초 제안보다 20% 이상 할인된 것으로 추산됩니다.

막대한 손해를 입은 CVC가 M&A 협상장에서 골드만삭스를 배제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입니다. 지난 6월 기업 인수금융 부문 공동대표가 된 최동석, 정형진 공동대표의 첫 작품이 사실상 실패작이 된 셈입니다.

이에 대한 골드만삭스의 변명도 재밌습니다. 골드만삭스 관계자는 “(악감정을 가진) 협상 상대방(대유에이텍)이 골드만삭스가 협상에 참여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고 설명했습니다.

국내외 많은 기업과 자본시장의 전문가들은 골드만삭스가 IB 거간꾼으로서 ‘유능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골드만삭스의 최근 딜 중에는 좋지 않은 결과물이 같이 늘고 있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코웨이, 동양매직, ING생명도 프로그레시브 딜을 진행하면서 시간을 끌다, 결과적으로는 흥행에 실패했습니다. 특히 웅진그룹과 동양그룹은 구조조정이 지체되며넛 법정관리를 신청했다는 비판도 제기됐습니다. (끝)

오늘의 신문 - 2024.04.30(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