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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룽지 아들이 중국 최고 투자은행을 떠난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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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광진 중국전문기자) 중국 유명 투자은행 중국국제금융(CICC) 최고경영자(CEO)인 주윈라이(朱雲來)의 사임 소식이 14일 전해졌습니다. CICC 이사회가 그의 사임 신청을 승인했다는 소식을 중국 증권시보가 보도했습니다. 주윈라이의 사임 소식이 눈길을 끄는 건 그가 주룽지 전 총리의 아들이라는 점 때문입니다.

그는 이 같은 배경을 등에 업고 CICC가 공상은행 등 굵직 굵직한 IPO 주간사 업무를 맡도록 해 한때 CICC를 중국 최고의 투자은행으로 키워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날 오후엔 주윈라이가 직원들에게 보낸 서신 내용까지 공개됐습니다. 그의 퇴진은 두 가지 점에서 주목할 만합니다.

첫째는 공산당 고위간부 자녀들이 국유기업 경영진에서 발을 빼는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주룽지는 물론 장쩌민 쩡칭훙 후진타오 원자바오 리펑 저우융캉 허궈창 등 전 국가지도자의 자녀들이 국유기업의 고위 경영진에 있거나 정부의 암묵적 후원을 등에 업은 사모펀드 등을 통해 부를 축적하고 있다는 설이 끊임없이 떠돌고 있습니다.

이들은 "홍색귀족"으로 불립니다. 주로 외신에서 흘러나오지만 이 같은 설에 고개를 끄덕이는 중국인들도 적지 않습니다. 홍색귀족의 존재는 작년 3월 국가주석에 취임한 이후 부패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시진핑에겐 큰 부담입니다. 전임자인 후진타오 정부 때 최고지도부의 일원인 저우융캉 전 공산당 상무위원이 부패혐의로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도 그의 아들의 비리 내용이 흘러 나왔습니다.

물론 ‘홍색귀족=부패 분자’라는 등식은 무리입니다. 더욱이 주윈라이이 아버지 주룽지는 총리 시절 부패와의 전쟁을 진두지휘했던 인사이기도 합니다. ”100개의 관을 준비하라 그 중 하나는 나의 것이다”는 철혈재상으로 통했던 주룽지의 경제개혁과 부패척결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어록입니다.

하지만 홍색귀족의 존재 자체는 시진핑 정부의 반부패 전선에 장애물인 건 분명합니다. 주윈라이는 아버지 주룽지 전 총리가 발탁한 왕치산 현 기율위 서기가 CICC 회장으로 있을 때 CICC 홍콩 담당으로 발탁됐다는 사실도 봐야 합니다. 왕치산은 시진핑 정부가 벌이는 부패와의 전쟁을 맨 앞에서 진두지휘하는 야전사령관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주윈라이의 사임은 이 같은 배경에서 나왔습니다. 그가 직원들에게 보낸 서신에서는 뚜렷한 사임 이유를 찾기 힘들었습니다. 1998년부터 16년간 CICC에 몸을 담은 시간이 자기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간이었다는 회고와 함께 세대교체의 의미를 강조했을 뿐입니다.

“장강후량추전량(長江後浪催前浪, 장강의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어낸다), 강산대유재인출( (江山代有才人出,, 천하는 대를 이어 인재를 배출했다)”는 대목이 그것입니다. 하지만 주윈라이는 1957년생으로 아직 은퇴하기엔 이른 나이입니다.

또 하나의 주목할 점은 그의 향후 행보입니다. 이 소식을 가장 먼저 전한 증권시보는 주윈라이가 최근 포럼에서 인터넷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발언을 한 사실을 들어 인터넷 분야에서 창업을 할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았습니다. 이럴 경우 작년부터 중국 금융을 휩쓸고 있는 인터넷 금융이 주윈라이의 제2인생 행로가 될 것으로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텅쉰 알리바바 등 중국의 간판 인터넷기업들은 이미 중국 정부로부터 민영은행 인허가를 받아 인터넷 중심의 은행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특히 알리바바는 얼마 전 뉴욕 증시에 상장할 때 공산당 고위간부 자녀들의 지분이 적지 않이 있을 것이라는 풍문도 돌기도 했습니다.

특히 인터넷 금융에 대해 저우샤오촨 인민은행 총재 등 중국 고위 금융관료들이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공개적인 발언이 이 같은 풍문을 뒷받침한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지요.

분명한 건 중국에서는 독점적 지위를 누려온 국유은행을 개혁하기 위해 민영은행의 성장을 촉진한다는 원칙을 세웠고 인터넷 금융의 부상은 이 같은 개혁에 날개를 달아 줄 것이라는 겁니다.

지난해 알리바바가 출시한 펀드상품(MMF)인 '위어바오(餘額寶)'는 1년 만에(6월 말 기준) 가입자는 1억명, 펀드 규모는 5741억위안(약 93조원)으로 불어났습니다. 중국 1위, 세계 4위의 MMF로 우뚝 선 겁니다. 주윈라이의 사임 보도에서 중국 인터넷 금융 시장의 발전 잠재력을 엿보게 됩니다. (끝)

오늘의 신문 - 2024.09.21(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