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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뒷 얘기

미국 소비자들이 "땡큐 아베"라고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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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심기 뉴욕 특파원) “땡큐 아베(Thank you, Abe).”

엔저(일본 엔화가치 하락)로 미국에서 팔리는 일본 자동차의 가격이 크게 떨어지면서 미국 소비자들의 선택의 폭이 훨씬 넓어졌습니다.

경제전문매체인 마켓플레이스에 따르면 미국에서 인기 높은 세단인 혼다 어코드의 평균 판매 가격은 2만1195달러입니다. 25년 전인 1989년 1만1700달러와 비교하면 약 80% 올랐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물가상승률을 감안한 가격은 1만1445달러로 255달러 낮아졌습니다. 무려 25년전보다 싸게 차를 팔고 있다는 얘깁니다.

자동차의 품질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1989년 당시에 출고된 혼다 어코드에는 에어백도 없었고, 미끄럼방지장치인 ABS는 상상할 수도 없었습니다. 에어컨도 옵션이었고, 유리창은 손으로 직접 돌려서 내려야 했습니다. 엔진출력도 85마력에 불과했습니다.

지금은 운전석은 물론 조수석 에어백에 ABS와 파워윈도우까지 기본 장착입니다. 출력도 185마력으로 배 이상 높아졌고, 연비는 더욱 향상됐습니다. 앞뒤 좌석간 거리는 더 넓어졌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일본의 장기침체를 뜻하는 ‘잃어버린 20년’을 되찾겠다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무제한 양적완화 덕분입니다. 엔화 가치가 급락하면서 달러화 표시 일본 공산품의 수출가격이 급락한 것이죠.

물론 미국에서 판매되는 혼다 어코드의 경우 대부분 미국 오하이오 공장에서 생산됩니다. 하지만 똑같은 달러를 벌더라도 이익금을 일본에 엔화로 보낼 때는 달러가 적게 필요하기 때문에 가격을 낮춰 더 많은 자동차를 판매하는 게 유리하다는 분석입니다.

덕분에 ‘죽어나는 곳’은 경쟁사들입니다. 경쟁 차종보다 수천 달러씩 싼 가격에 자동차를 내놓으니 말 그대로 ‘악소리’가 나고 있습니다. 미국 소비자들도 포드 등 자국 자동차 메이커보다 일본차에 눈길을 돌리고 있으니 말입니다.

한국 자동차는 어떨까요? 자동차 전문 사이트인 KBB에서 2015년 기본 모델을 비교해봤습니다. 현대차 쏘나타의 기본 모델(배기량 2.4리터) 가격은 2만4325달러입니다. 동급 엔진을 장착한 혼다 어코드 DX모델의 가격은 2만36955달러였습니다.

MSRP(제조사 제안가격) 기준으로 캐시백과 같은 인센티브를 제외한 가격으로 실제 판매가격은 다를 수 있습니만 엔저로 인한 미국시장에서의 가격 역전이 현실화되고 있습니다. “땡큐, 아베”라고 맘 편하게 얘기할 수만은 없는 상황입니다. /sglee@hankyung.com

오늘의 신문 - 2024.05.06(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