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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뒷 얘기

공정거래위원회도 '일감 몰아주기'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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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혜 경제부 기자) “공정거래위원회가 발주하는 정책연구용역이 대부분 수의계약으로 진행되고 있다. 심지어 수의계약자 35%는 공정위의 자문위원이다. 자문위원은 사실상 기관 내부인이나 다름없는데, 정책연구의 공정성과 적정성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나.”

민병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지적입니다.

민 의원은 공정위로부터 2009년~올해 6월까지의 정책연구용역 수행현황 자료를 받아 분석한 결과, 이 기간 공정위가 발주한 총 158건의 정책연구용역 중 146건(92.4%)이 수의계약으로 처리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23일 발표했습니다. 수의계약 146건 중 51건(34.9%)은 공정위 업무에 참여하고 있는 자문위원이 수행했다는 내용도 공개했습니다.

수의계약이란 국가기관이 용역을 맡길 때 경쟁입찰 등을 통하지 않고 담당 공무원이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한 대상을 임의로 선정해 맺는 계약을 뜻합니다. 일종의 ‘낙점’인 셈이죠. 자칫하면 아는 사람끼리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는 ‘짬짜미’가 발생할 수 있겠죠?

그래서 국가계약법은 각 중앙관서의 장 또는 계약 담당 공무원이 계약을 체결할 때 일반경쟁에 부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다만 예외를 뒀습니다. 계약의 목적이나 규모 등을 고려해 필요성이 인정되는 경우엔 수의계약을 할 수 있도록요.

민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실제 공정위의 수의계약률은 매우 높습니다. 2009년~2011년엔 각 연도의 연구용역 계약 100%가 수의계약으로 진행됐습니다. 수의계약된 과제 중 공정위 자문위원이 연구를 수행한 건수도 각각 18.%, 15.6%, 39.2%에 달했습니다.

2012년부터는 수의계약률이 그나마 좀 낮아집니다. 2012년과 2013년, 올해(6월까지)의 수의계약률은 각각 90.6%, 75%, 80%였습니다. 100%에서 하락한 정도 만큼 ‘낙점식 수의계약’이 아닌 ‘경쟁’을 통해 선정된 연구자가 용역을 맡은 겁니다.

민 의원은 “정책 연구용역을 외부에 발주하는 이유는 각종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로운 외부 전문가로부터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정책 수립에 참고하기 위한 것”이라며 “사실상 기관 내부인 역할을 하는 자문위원이 공정위의 정책연구용역을 독점하다시피 하는 것은 연구용역에 대한 신뢰성을 떨어뜨린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공정위는 자문위원에게 연구용역을 몰아주는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기관의 자문위원에게 정책연구용역을 맡기는 것. 어찌보면 ‘일감 몰아주기’ 규제하는 공정위 자신이 ‘일감 몰아주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공정위에서 연구용역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당사자는 억울하다는 입장입니다.

김재신 공정위 경쟁정책과장은 “국가계약법 시행령 상 금액 5000만원 이하의 용역에 대해선 경쟁입찰이 아닌 수의계약이 가능하다”며 “법적으로 문제되는 사항은 아니다”고 말했습니다. 실제 2009년 이후 공정위가 발주한 연구용역 계약금액은 모두 2000~3000만원으로, 5000만원이 넘는 건 한 건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는 또 수의계약 건의 35%를 기관 자문위원이 맡았다는 점에 대해선 “공정거래 분야는 전문 연구자가 많지 않아 불가피하게 연구용역 수행자와 자문위원들 사이에 ‘교집합’이 생긴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과제가 자문위원에게 쏠리는 걸 막기 위해 경쟁에 부쳐도 봤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원자가 없어 결국 자문위원에게 돌아갔다네요. 2012년 경쟁입찰을 실시해봤지만 연구하겠다고 나서는 연구자가 없어 두 번이나 유찰됐다고 합니다.

전문가들에게 일일이 전화해 “이런 연구용역을 발주했으니 관심 가져달라”고 호소도 했지만 적임자가 나타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연구 역량이 있는 전문가가 적은 데다 연구지원비도 크지 않다 보니 지원자가 별로 없다는 김 과장의 설명입니다.

김 과장은 “자문위원이 수행한 수의계약이 3건 중 1건(35%) 수준이라는 걸 반대로 생각하면, 3건 중 2건은 자문위원 아닌 외부인사가 수행한 것”이라며 “연구자를 구하기 어려운 여건 속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토로했습니다.

이왕이면 경쟁을 통해 연구를 가장 잘 수행할 수 있는 전문가, 공정위와 이해관계가 없는 외부인이 용역을 맡으면 가장 바람직하겠지만 현실적 어려움도 있나 봅니다.

그러나 임의 낙점이나 다름없는 수의계약률이 너무 높은 점, 더구나 ‘한 집안 관계자’ 같은 자문위원의 연구수행비율이 높은 점 등이 아쉬운 것도 어쩔 수 없네요. 여러분은 어느 쪽 입장에 더 공감하십니까? (끝)

오늘의 신문 - 2024.05.06(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