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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사태 그후(4) 최수현은 처음부터 왜 그리 흥분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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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영춘 금융부 기자) “제가 생각하는 것은 딱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국내 금융산업 발전이고, 다른 하나는 박근혜 정부의 성공입니다. 이를 위해 과연 어떻게 하는 것이 현명한 지를 판단해 결정할 겁니다.”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은 9월3일 저녁 지인들을 만나 이렇게 말했다. 표정은 단호했고, 결연했다. 당시 그를 만난 지인들은 다음날 최 원장이 ‘뭔가 일을 벌일 것’이란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인 9월4일 최 원장은 엄숙한 표정으로 임영록 KB금융 회장 과 이건호 국민은행장에 대한 징계수준을 ‘중징계(문책경고)’로 높인다(임 회장에 대해선 금융위원회에 중징계 건의)고 발표했다. 최 원장의 자문기구인 제재심의위원회의 경징계(주의적 경고) 결정보다 한단계 상향한 것이다. 금감원장이 제재심의위원회의 결정을 뒤집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를 계기로 한풀 시들해진 KB사태는 다시 한번 한껏 증폭됐다.

따지고 보면 최 원장의 ‘거사’는 어느 정도 예상됐다. 제재심의위원회가 두 사람에 대해 경징계를 결정한 것은 8월21일. 다음날 간부회의에서 최 원장은 “제재심의위원회는 절차상 문제가 있었다”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 금감원의 당초 징계수준(중징계)을 뒤집은 제재심의위원회에 유감을 표명한 것이었다.

그래도 ‘설마’ 했다. 불만이 있더라도 최 원장이 제재심의 결정을 뒤집기는 힘들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했다. 경징계를 유지하되, 구체적 설명을 통해 두 사람의 퇴진을 우회적으로 촉구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아니었다. 최 원장은 보름동안 각계 각층의 지인들을 두루 만나며 의견을 구했다. 이 과정에서 “사심이 없다”거나, “금융산업 질서를 바로잡은 뒤 떠나면 된다”는 등의 발언을 자주 했다. 배수의 진을 친 분위기였다는 게 그를 만난 사람들의 공통된 전언이었다.

그렇다면 최 원장은 왜 이처럼 KB사태를 확산시키는 총대를 맸을까?

KB사태 진행과정에서 가장 의아심을 자아낸 사람은 다름 아닌 최 원장이었다. 이건호 행장이 전산교체 문제와 관련된 문제를 금감원에 처음 신고한 것은 5월19일이다. 금감원은 신고를 받자 마자 그날 특별검사에 착수했다. 실로 전광석화였다. 2010년 9월2일 이른바 ‘신한사태’가 났을 때도 꿈쩍 않던 금감원이었다. 이런 금감원이 기다렸다는 듯이 특검에 나섰으니 금융권이 받아들이는 강도는 달랐다.

뿐만 아니었다. 최수현 원장은 이후 사석에서 “(임영록 회장과 이건호 행장이) 자리를 내놓을 사건”이라는 요지의 발언을 자주 했다. 일부에서 “왜 그럴까”는 의구심을 자아낼 정도였다.

최수현 원장과 금감원 간부의 발언이 흘러 다니면서 임영록 회장과 이건호 행장의 중징계 가능성이 줄곧 거론됐다. 일부에서 “무슨 그깟 주전산기 교체사건으로 회장과 행장을 중징계하느냐”고 날을 세웠지만, 금감원 전반적으론 강경론이 우세했다. “마치 처음부터 작정한 듯한 분위기였다”는 분석이 나올 정도였다.

최 원장의 강공 드라이브는 계속됐다. 그의 자문기구인 제재심의위원회가 경징계로 감경했지만, 그는 인정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중징계로 다시 올리는 거사를 감행했다.

고백하건대, 현재까지 기자가 취재한 이유는 정확하지 않다 (아마 최 원장을 만나면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 추론컨대 몇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사안의 엄중성이다. 당시는 세월호 참사가 터져 정권의 명운이 걸린 시기였다. 당연히 모두가 자숙하는 분위기였다. 숨소리도 죽여 가는 찰나, KB금융만은 마음 놓고 싸워댔다. 정부와 청와대로서는 이유 불문하고 이런 상황을 받아 들일 수 없었다. 당연히 감독을 책임지는 최 원장에게 책임을 물었을 거다. “조용히 좀 시키라”고.

평소 애국심과 책임감으로 똘똘 뭉친 최 원장이었다. 이건호 행장이 주전산기 관련 문제를 금감원에 신고하자마자 특검에 나섰던 이유다. 나라가 세월호 참사로 침잠해 있는 상황이었다. 앞뒤 없이 날뛰는 KB금융 경영진이 못내 못마땅했다. 결론은 속전속결이었다. 특검도 빨리 끝냈고, 정보유출사건을 제쳐두고, 전산 관련 내분을 제재심의위원회 제1과제로 올린 이유다.

두 번째는 주변 상황이다. 당시는 세월호 참사로 개각이 발표되고 차관급 인사를 앞둔 시기였다. 최 원장이 바뀔 것이란 관측도 무성했다. 이런 상황에서 최 원장은 자신의 존재의 이유를 과시하고 싶었을 것이란 추측이다. 일부에서는 이를 가장 큰 이유로 꼽지만, 평소 최 원장의 성격을 감안하면 아니라는 관측이 훨씬 우세하다.

세 번째는 ‘의도적 임영록 회장 추출론’이다. 이는 임 회장 주변에서 나오는 얘기다. 최 원장이 ‘정권 핵심’의 사인을 잘못 해석해 나타난 결과라는 해석이다. 청와대 핵심 인사가 임 회장에 대해 좋지 않게 얘기하자 최 원장이 임 회장을 바꾸라는 신호로 해석, 과잉행동을 했다는 것이 이 가설의 골자다. (일부에서는 임 회장 후임으로 정권과 가까운 인사를 앉히기 위해 이런 사인을 냈다는 관측도 있으나, 확인은 되지 않는다. 현재 시점에서는.)

이런 주장을 펴는 사람들은 임영록 전 KB금융 회장이 끝까지 강수를 둔 것에서 이유를 찾는다. “감독당국이 임 회장에게 전후 사정을 설명한 뒤 자리를 비워 달라고 하면 군말없이 나갔을 거다. 차관까지 지낸 임 회장이다. 하지만 감독당국은 특정인을 위한 자리를 만들기 위해 비겁하게 임 회장을 파렴치범으로 몰아 붙이며 내몰려고 했다. 임 회장으로선 전혀 수긍할 수 없었다”는 주변의 얘기를 들으면 임 회장의 결사항전의 이유가 이해되는 대목이다.

뭐, 믿거나 말거나. 최 원장의 강공 드라이브는 결과적으로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막판 변수도 없지 않았다. 금융위원회가 임 회장에 대해 3개월 직무정지를 결정하던 9월12일 아침자 C일보에 ‘최수현 원장 경질’이란 기사가 1면에 실렸다. 이런저런 말이 난무했다. C일보가 임 회장을 구제하기 위해 최 원장을 궁지에 몰아 이 날짜로 이런 기사를 내보냈다는 해석이 우세했다. 이런 보도로 미뤄 최 원장의 경질은 시간문제로 보였다.

하지만 아니었다. 임 회장은 해임됐고, 최 원장은 건재했다. 과연 최 원장은 어떤 이유로 임 회장 몰아내기의 총대를 맸을까? 아마 그의 강직한 성품과 애국심, 그리고 그의 거취를 둘러싼 정치적 게임이 그런 결과를 초래했다는 게 맞을 것 같다. /ha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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