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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웨이가 죄수 1300명 네덜란드로 보내는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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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라 국제부 기자) 성당처럼 하늘 높이 솟은 돔 형태의 지붕, 그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 관엽수로 편안하게 정돈된 로비, 방마다 갖춰진 평면 TV….

호텔의 모습이 아닙니다. ‘1급 보안 죄수’들을 수감하는 노르웨이 오슬로의 할덴 교도소의 모습니다. 오슬로 외곽에서 보안등급 하위 죄수들을 수감하는 교도소는 이보다 더 좋습니다. 사우나와 테니스 코트, 오두막까지 갖추고 있어 ‘세상에서 가장 럭셔리한 교도소’로 불립니다.

노르웨이 정부는 내년부터 6억9000만달러(약 7200억원)를 들여 교도소 시설을 업그레이드하거나 리모델링할 예정입니다. 3600명에 달하는 죄수들에게 ‘평범하게, 사람답게 살게 해주자’는 취지입니다. 노르웨이 정부는 몇년 전부터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자’는 뜻으로 교도소 리모델링에 나섰고, 그 결과 범죄 재발율이 세상에서 가장 낮은 국가가 됐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을 선고받은 범죄자 수가 교도소 침대보다 많아지면서 죄수 1300명이 갈 곳을 잃었다고 합니다. 비다르 브레인-칼슨 노르웨이 법무부 차관은 “형을 선고받은 죄수들이 집에서 대기하거나 길에서 돌아다니고 있다”며 “특단의 조치를 내놓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노르웨이의 특단의 조치는 뭘까요? 이웃나라로 범죄자들을 잠시 이송하는 겁니다. 행선지는 네덜란드입니다. 네덜란드 정부는 지난해 범죄자 수보다 교도소가 너무 많다며 텅텅 비어 있는 19개 교도소를 문 닫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이달 제시된 양국 간의 수감자 교환 프로그램은 내년부터 시작될 예정입니다

블룸버그통신은 “지난 2011년 77명을 대량 학살한 베링 브레이빅 등 최고 위험 수준의 수감자들은 노르웨이에 남고 일반 죄수들의 경우 네덜란드로 이송, 노르웨이 교도관들의 관리 감독을 받게 된다”고 전했습니다.

죄수들이 국경을 넘어 교도소 이주를 떠나는 건 미국에서 낯익은 풍경입니다. 미국의 4개 주는 넘쳐나는 죄수를 감당하지 못해 하와이, 버몬트 등으로 주로 이주를 보냈죠.

유럽에서는 지금까지 드문 풍경이었습니다. 나라마다 언어가 다르고 문화적 장벽이 있다는 이유입니다. 인권 유린의 위험이 크다는 것이었죠. 벨기에가 2009년 네덜란드로 550명의 죄수들을 이송시킨 게 처음이었습니다. 벨기에는 네덜란드 정부에 교도소 전셋값으로 연 5200만달러를 내고 있다고 합니다.

노르웨이는 네덜란드에 앞서 스웨덴과 죄수 이송에 관한 협약을 논의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했습니다. 범죄자들을 마땅히 수감하지 못해 골머리를 앓는 건 노르웨이 뿐만 아닙니다. 이미 노르웨이, 벨기에, 룩셈부르크, 미국, 캐나다, 인도 등이 수용한계치를 훨씬 뛰어넘었습니다. 브라질은 범죄자 수가 교도소 수의 2배를 뛰어넘고 있죠.

노르웨이의 이번 사례가 성공하면 유럽 다른 나라들 간 ‘범죄자 교환 수감’이 활발해 질 지 주목됩니다. (끝)

오늘의 신문 - 2024.05.02(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