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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X를 둘러싼 KAI와 대한항공의 감정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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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훈 정치부 기자) “수십년간 축적된 항공기술이 있다. 참여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대한항공 관계자)

“이번에 또 블러핑(허세를 부려 상대를 속이는 것)을 하는 것이다.”(KAI 관계자)

대한항공이 한국형 차기 전투기 개발사업(KF-X)에 참여한다는 입장이 알려진 17일, 항공 제조업을 하는 두 회사 간 감정다툼이 벌어졌습니다. KAI 관계자는 “또 시장을 교란하려고 한다”고 말한 반면, 대한항공은 적극적인 대응을 자제하고 있습니다.

KF-X 사업은 방산업계에서 ‘단군이래 무기 도입 프로젝트’로 불립니다. 개발과 양산에 향후 20여년이 소요되고 총사업비 규모도 20조원이 넘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우리 손으로 F-16급 전투기를 개발한다는 상징성도 큽니다.

KAI 측이 반발하는 이유는 지난 6월 발표된 소형 민수 헬기(LCH) 핵심 기술개발사업 및 소형 무장 헬기(LAH) 체계개발사업에서의 경험 때문입니다. 당시 소형 무장헬기 사업비는 5800억원 규모였습니다. 이 프로젝트에 대한항공이 뒤늦게 참여하면서 사업비의 두 배가 넘는 1조2000억원을 써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최저가를 쓴 업체가 낙찰된다는 점을 볼 때 대한항공이 ’사업에 참여할 진정성이 떨어진다‘는 논란이 제기되는 대목입니다.

방산업계 고위 관계자는 “대한항공의 기술력으로는 KF-X 사업을 수행하기 힘들 것이란 의문이 있는 게 사실”이라며 “기술평가점수에서 최소 기준인 80%를 넘기지 못해 과락을 맞은 것으로 안다”고 했습니다. 이 사업은 결국 KAI가 가져갔습니다. KAI관계자는 “헬기를 따냈다는 말은 전반적인 항공 제작 능력에서 우수하다는 의미”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KAI로서도 경쟁업체가 입찰에 참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사업비를 다시 책정해보는 등 품을 더 들였겠죠.

업계에서 대한항공의 KF-X 사업 참여를 ‘블러핑’으로 보는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기술에 대한 우려가 있는 건 안다. 그때문에 미국 보잉과 EADS(유럽항공방위우주산업)과 접촉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아쉽게도 대한민국은 미국과 유럽 등 주요 항공선진국에 비해 전투기 제작 능력이 뒤집니다. 이 때문에 KF-X 사업에서도 미국으로부터 기술을 도입해야 하는 데요, 현재 방위산업 당국은 FX-3차 사업 최종 수의계약자로 유력한 미국 록히드마틴과 KF-X에 들어갈 기술을 받아오는 절충교역 협상을 벌이고 있습니다.

절충교역이란 무기거래시 일정 비율 이상을 특정 기술도 함께 무기와 함께 패키지로 들여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차기 스텔스 전투기로 F-35를 들여올 것이 확실시 되면서 록히드 마틴은 KF-X 사업에서 기술협력업체(TAC)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록히드 마틴의 기술을 일부 받아와 제작을 한국 업체가 맡는 KF-X 사업에서 보잉, EADS와 협력한다는 말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록히드 마틴은 KAI와는 T-50 개발을 공동으로 진행한 경험이 있고, 미국 고등훈련기 TX 사업에도 협력할 예정입니다. 향후 수십년간 300~500대 규모를 미국 공군에 납품하는 수십조원대 사업입니다.

대한항공으로선 왜 블러핑을 해야 했을까요? 항공업계 고위 관계자는 재밌는 말을 들려줬습니다. 대한항공 실무자 급에게 “우리는 오너 회사”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들었다는 것입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방위산업진흥회 명예회장입니다. 대한항공은 항공기 여객업을 하는 회사로 알려져 있지만 수십년간 부산 항공테크센터에서 항공기 부품 제작 사업과 군용 항공기 창정비 사업 등을 벌여왔습니다. 조 회장은 대한항공이 여객과 항공기 제작 부문을 함께 수행하는 ’수직계열화‘의 목표를 갖고 있습니다. 사업에 참여한 게 ‘회장님’의 의지라고 한다면, 대한항공이 적극적 목소리를 내지 않는 이유도 이해가 갑니다.

대한항공이 무조건 떨어질 것이라고 보는 것은 곤란합니다. 대한항공의 항공부문은 2013년 매출 7642억원, 영업이익 210억원을 올렸고, 주요 민항기에 들어가는 동체와 날개부분 보잉, 에어버스 등에 납품해와 동체 제작 능력에서는 꽤나 앞선 기술을 갖고 있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군용항공기 제작 능력에 있어선 국산 최초의 초음속 항공기인 T-50을 제작한 KAI를 넘어설 순 없겠죠. KAI는 KF-X 사업 등을 본격화하기 위해 1000여명의 연구개발(R&D) 인력을 내년까지 채용한다고 최근 밝혔습니다.

KAI 측에선 “99% 우리가 된다. 대한항공이 입찰에 참여하면 오히려 수월해지는 면도 있다. 단독입찰을 하면 1차는 반드시 유찰되고 2차에서 유찰수의계약으로 진행되는데 대한항공이 입찰에 참여하면서 그 과정은 빨라질 수 있다”는 말도 들립니다.

사실 KAI와 대한항공의 감정다툼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닙니다. IMF 외환위기 이후 정부의 항공산업 구조조정을 방침에 따라 삼성항공, 대우중공업항공부문 등이 KAI로 통합될 당시, 대한항공은 정부의 동일기준 합병 기준에 반발해 KAI 출범에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유일한 항공제조부문 흑자기업이라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이후 조 회장은 항공우주산업 진출을 위해 틈날 때마다 KAI 지분 인수를 타진해왔고, 그때마다 KAI 노조가 극렬 반발한 바 있습니다. 두 회사는 이후로도 군의 무인기 프로젝트를 나눠 수주하는 등 등 대립 관계를 이어왔습니다.

대한항공의 KF-X 참여가 ‘회장의 의지’ 때문인지, 블러핑인지는 오는 11월께 입찰결과가 나와봐야 알게 될 것 같습니다. 공군 관계자는 “KF-X 사업이 수차례 미뤄지면서 F-16이 도태되는 시점에서 전력 공백이 가장 우려된다”며 “무엇보다 사업이 빨리 진행되는 게 우선”이라고 했습니다.

방위사업청 관계자는 “사업계획서를 제출받으면 가격 뿐 아니라 기술 조달계획과 협력업체에 공정관리 등을 종합적으로 심사한다”며 “어떤 회사가 국민의 염원인 차기 전투기를 제작할 능력을 갖췄는지 잘 가늠하면 될 일”이라고 했습니다. daepun@hankyung.com

오늘의 신문 - 2024.05.17(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