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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는 '차별'의 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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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라 국제부 기자) 10대 흑인 청소년이 백인 경관이 쏜 총에 맞아 숨진 이른바 ‘퍼거슨 사태’ 이후 미국 사회의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실리콘밸리에 불똥이 튀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실리콘밸리를 ‘기회의 땅’으로 여기고 있지만 실제로 인종 나이 성별에 따라 거대한 칸막이가 존재한다는 겁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1960년대부터 흑인 등 소수인종 권익 보호를 옹호해온 인권운동가 제시 잭슨 목사의 말을 인용해 “실리콘밸리는 특정 인종을 배제하는 병적 징후를 보이고 있다”며 “정보기술(IT)가 아니라 차별의 요람이 되고 있다”고 꼬집었습니다.

애플, 트위터, 구글, 야후 등 실리콘밸리를 대표하는 IT기업의 직원 인종 구성을 보면 확연히 드러납니다. 애플은 백인 직원이 54%, 아시아인이 23%이고 트위터는 백인이 58%, 아시아인이 34%로 압도적입니다. 구글 역시 백인 60%, 아시아인 34%이고, 페이스북은 백인 53%, 아시아인41% 입니다. 아시아인이 절반을 넘는 곳도 많습니다. 야후는 아시아인 58%, 백인이 35%이고 링크트인은 아시아인 60%, 백인 34% 였습니다. 이베이 역시 아시아인이 54%, 백인이 40% 입니다.

이와 반대로 수위직에는 히스패닉과 라틴계(69%)가 대부분이었고, 백인(15%), 아시아(12%), 흑인(3%)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개발자 1명의 일자리가 창출될 때 그에 따라 운전사, 요리사, 청소부 등의 서비스직 4명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건물 유지보수 분야 종사자는 히스패닉과 라틴계(74%)가 대다수를 차지했고, 백인(15%), 아시아(8%), 흑인(1%) 순으로 많았습니다. USA투데이는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억만장자를 수십명, 백만장자 수천명을 찍어냈지만 그 안에 차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잘 알려지지 않았다”고 지적했습니다. 소프트웨어 개발자와 애플리케이션 개발자의 임금은 시간당 평균 63.63달러, 61.87달러인 데 비해 조경관리자(13.82달러), 수위11.39달러) 등 서비스직의 시간당 평균 임금은 엔지니어의 6분의 1 수준이었습니다.

실리콘밸리의 생활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습니다. 서비스직 종사자의 경우 초과 근무를 다 하더라도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임대료와 식료품비를 내고 있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인텔과 MS의 본사가 있는 산타클라라 아파트의 임대료는 월평균 2321달러. 4인 가족이 시간당 19.36달러 수입으로 생활하는 기초생활수준 미만 가구는 30%에 달합니다.

실리콘밸리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오래된 이슈입니다. 억대 연봉을 받는 IT인재들이 실리콘밸리로 몰려들면서 사무실 아파트 주택임대료는 고공행진을 했습니다. 높아진 임대료를 감당 못해 강제 퇴거 당한 사례는 지난해 4000건을 넘어섰습니다. 2000년만 해도 연 1000건을 밑돌았지만 급증한 것이죠. 지난해 말에는 샌프란시스코의 성난 시민들이 구글의 통근버스 등을 막아세우고 시위를 벌이는 일이 부쩍 많았습니다. 플래카드에는 이런 말이 가장 많이 등장했습니다. “공들이들, 꺼져라! 너희들은 여기서 환영받을 수 없다.”

‘그들만의 리그’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면서 IT기업들도 자정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회사마다 다양성 보고서를 자발적으로 만들어 소수인종과 여성들도 프로그램 코딩을 배울 수 있도록 독려하고 흑인에게도 적극 채용 기회를 주고 있습니다. 구글은 직원들을 대상으로 '무의식적 편견'을 의식적으로 없애는 사내 훈련도 도입했습니다.

FT는 그러나 “소수인종이 채용의 문을 뚫더라도 사내 문화에서 소외돼 임원직까지 오르기는 어려운 구조”라며 “직원 평균 나이가 20~30대로 경험 많은 40대 이상 연장자들을 소외시키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영국 일간 더타임스 역시 “천문학적 돈을 벌고 있는 실리콘밸리가 수천 명의 흑인, 히스패닉에게 청소, 수리 등 외부용역을 맡기면서 월급은 쥐꼬리만큼 주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끝)

오늘의 신문 - 2024.05.02(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