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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에는 ‘파이터’ 교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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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형주 지식사회부 기자) 지난 21일 오후 관악경찰서를 돌며 특이한 사건 하나를 접했습니다.

지난달에 서울대 교수와 학생 간 ‘쌍방폭행’ 사건이 접수됐다는 거였죠. 담당 형사팀장에게 확인해보니 ‘쌍방’은 아니고, 60대 중반의 ‘명예교수’가 교내에 오토바이를 세우려던 20대 학생을 밀치고 멱살을 잡는 등 일방적으로 폭행한 사건이었습니다.

사건은 이렇습니다. 지난달 20일 서울대 학생 L모씨(24)는 오토바이를 잠시 중앙도서관 근처에 세웠습니다. 이때 K교수가 다가와 “여기 오토바이를 세우면 안 된다”며 화를 냈습니다.

“죄송하다”며 자리를 옮기려던 L씨는 잘 모르는 사람이 계속 자신을 훈계하자 욕설을 뱉었습니다. 이를 들은 K교수도 욕설과 함께 L씨를 폭행한 것입니다.

이후 한동안 서로 고성이 오간 끝에 K교수는 교수증을 꺼내 자신의 신분을 밝히며 L씨를 불법주차 혐의로 신고하겠다고 말했습니다.

L씨도 경찰에 K교수를 폭행 혐의로 신고했습니다. 경찰조사에서 양자 간 원만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자 경찰은 8월 초 K교수를 폭행 혐의로 불구속 입건해 서울중앙지검에 송치했죠.

이 사건만 놓고 보면 교수보다 오토바이 불법주차라는 원인을 제공하고 욕설을 뱉은 학생이 문제가 더 크다고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저도 처음엔 버릇 없는 ‘요즘 세대’ 학생이 일을 키웠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러나 이 사건이 보도된 22일 오후부터 학생들의 증언이 속속 나오면서 분위기가 달라졌습니다. 서울대 학생들 사이에선 사건의 당사자로 올해 2월 정년퇴임한 자연계열 K모 명예교수(65)가 쉽게 떠올랐다는 얘기가 나왔습니다. 그만큼 K교수의 ‘전적’이 화려하기 때문인데요.

육군사관학교 교관 출신으로 알려진 K교수는 평소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주먹이 먼저 나가는 성격으로 유명하다고 합니다. 6~7년 전 교내에서 한 학생이 버스 뒷문으로 승차하자 손찌검을 한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당시 피해학생의 지도교수는 “K교수가 이상한 거 다 알지만 그래도 내 친구니 이해해 달라”며 대신 양해를 구했다고 합니다.

이외에도 본부 앞 잔디밭에 들어간 학생에 갑자기 발길질을 하는가 하면, 교내 카페 ‘투썸플레이스’에 교수 전용석을 설치해달라고 요구해 관철시키는 등 K교수의 기행사례는 적지 않습니다.

물론 K교수가 정말 나쁜 의도로 그런 건 아니라는 반론도 있습니다. 한 학생은 K교수가 “평소 학교에서 규범을 어기는 사람들에게 자주 실망했다”며 “나 하나쯤이야 하면서 부끄러운 것도 모르고 잘못하는 사람들보다 훨씬 솔직하고 바른 분”이라고 옹호했습니다.

근본적으로 교수들의 ‘권위의식’ 자체가 문제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내가 누군지 알아?”라며 교수증을 꺼내고 권위를 내세우는 식의 해결방법이 그다지 바람직해 보이진 않는다는 겁니다. (끝)

오늘의 신문 - 2024.05.18(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