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승장 수인(守仁)이 밥 지을 중 두우(杜宇)를 데리고 왔다.’(정유년 5월8일)
‘중 혜희가 와서 보기에 의병장의 사령장을 만들어 주고, 또 총통 따위는 묻어두라고 일렀다.’(정유년 8월8일)
영화 ‘명량’ 인기가 식을 줄 모르고 이어지는 가운데 ‘호국의승의 날’을 국가기념일로 제정해야 한다는 불교계 주장이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불교계 최대 종단인 조계종이 27일 오전 11시 조계사 대웅전에서 ‘호국의승의날’ 국가기념일 제정 추진위원회 발족식을 열기로 했다네요.
위원장을 총무원장 자승 스님이 맡은 만큼 그냥 시늉에 그칠 기세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발족식이 끝난 뒤에는 참석 내외빈의 서명을 시작으로 ‘호국의승의 날’ 국가기념일 제정을 위한 서명운동을 전국적으로 전개해 나갈 거라고 합니다.
불살생과 자비의 종교인 불교 수행자들이 창검으로 적의 목숨을 빼앗는 것이 타당한지에 대한 논란은 오래 동안 계속돼 왔습니다. 이른바 ‘호국불교’라는 것이 불교의 교리에 맞는 것이냐는 데서 비롯된 논란이죠.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선조는 서산대사에게 ‘팔도십육종도총섭(八道十六宗都摠攝)’직을 수여하고 나라와 백성을 구하라고 명합니다. 서산대사께서는 계를 파하는 비난을 감수하면서 오직 나라와 백성을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전국 사찰에 격문을 보내 사명대사, 처영대사, 영규대사 등 제자들과 함께 5000여명의 의승군을 소집했지요.
서산대사는 73세의 노구를 이끌고 평양성 전투에 참여해 왜적을 퇴각시켰고, 처영대사는 권율과 함께 행주산성 전투에서 승리했습니다. 사명대사는 노원평 전투에서 승리함으로써 한양 수복에 큰 역할을 했고요. 800여명의 전라좌수영 의승수군은 여수 흥국사를 중심으로 전투에 참가해 조선 수군의 승리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의승군은 조선의 군세를 회복하고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구제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라고 불교계는 평가합니다.
임진왜란 이후 조정은 스님이 나라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해 남한산성과 북한산성 등 산성의 축성과 수비를 승군에게 맡겼습니다. 왕조실록을 분산 보존하던 사고지를 모두 사찰 경내에 조성해 이를 수호하는 사찰을 지정하고 승장과 승군에게 운영을 맡겼죠.
일제강점기에 스님들이 3·1운동, 임시정부 수립 등에 참여하고 국내 독립운동의 중요 역할을 수행한 것은 이런 의승군의 전통에 따른 것이라고 하지요.
그런데도 국가의 위기 상황에서 중대한 역할을 한 승장과 의승군의 고귀한 희생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아직까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불교계는 주장합니다. 임진왜란 당시 금산 전투에서 의병장 조헌이 이끈 700명의 의병과 영규대사가 이끈 의승군이 연합해 1만5000명의 왜군과 격전을 벌인 끝에 700 의병과 200 의승군이 전몰했는데, 승군은 700의총(七百義塚)에도 들어가지 못한 채 무명용사의 상징으로만 남게 된 것이 대표적인 사례죠.
더구나 조선 조정은 서산대사, 사명대사 등 승장과 승군의 공훈을 인정해 해남 대흥사, 밀양 표충사 등에서 국가적인 제향(祭享)을 지내도록 했지만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이마저도 맥이 끊어져 지금은 사찰별로 추모제를 지내고 있는 실정이라는 겁니다.
해남 대흥사에서는 매년 4월 말 ‘호국대성사 서산대제’를, 밀양 표충사에서는 매년 봄·가을에 사명대사 추모대제를, 공주 갑사에서는 매년 10월 영규대사 추모제를, 정읍 내장사에서는 매년 6월 희묵대사 추모제를, 여수 흥국사에서는 매년 5월 의승수군을 기리는 수륙제를 지내고 있습니다. 그 외 많은 사찰에서 승장과 승군의 넋을 달래는 추모제를 지내고 있고요.
따라서 맥이 끊긴 국가제향을 복원해야 한다는 주장이 불교계에서 간헐적으로 제기돼다 지난해 6월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서산대제의 국가제향 복원을 위한 학술 세미나’에서 전문 연구자들과 시민들은 ‘호국의승의 날’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해 서산대사와 역사 속에 묻힌 의승을 추모해야 한다고 주장하기에 이르렀죠.
조계종은 지난 6월 25일 ‘호국의승의 날’ 제정을 위한 기구를 구성하기로 하는 한편 ‘호국의승의 날’ 제정 사업을 종단의 중점 사업으로 본격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27일 정·관계와 학계 등을 망라해 발족하는 ‘호국의승의 날’ 국가기념일 제정추진위는 그런 노력의 결실이자 본격적인 추진의 출발점입니다. 추진위는 서명운동을 시작으로 국회 청원 등 범 국민적 관심과 지지를 이끌어낼 계획인데, 얼마나 국민적 공감대를 이룰 지 주목됩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