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얼마 전 여의도 최고 명당이 어딘지를 놓고 취재원들과 나눴던 얘기를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여의도는 한국거래소를 비롯해 각종 금융기관들이 몰려 있어 ‘한국의 맨해튼’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돈이 들고나는 곳이다 보니 아무래도 기의 흐름에 민감할 수밖에 없겠지요.
사실 여의도는 풍수지리학적으로 그리 좋은 땅은 아니라고 합니다. 한강(물)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고, 모래가 쌓여서 형성된 섬이라 재물이 쌓이기보다는 흩어지기 쉬운 형상이라고 하네요. 그렇다 보니 많은 회사들이 사무실을 옮기거나 할 때 지관에게 조언을 구하고, 액막음을 하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런 곳에도 여기저기 기가 좋은 터는 있기 마련이지요. 지금은 미래에셋생명 건물이 된 옛 미래에셋증권 본사 건물이 그렇습니다. 풍수지리를 중시하는 박현주 그룹 회장이 본사 건물을 들일 만큼 터가 좋았다는 건데요. 실제로 미래에셋증권은 이 곳에 터를 잡은 뒤 펀드 열풍을 일으키며 주요 증권사로 발돋움했습니다.
미래에셋빌딩을 등지고 대각선 방향에는 국민은행 본사 건물이 있습니다. 원래 주택은행 본사였는데, 주택은행은 2001년 국민은행과 합병하면서 지금의 KB금융지주가 됐습니다. 국민은행에서 길을 건너면 대신증권과 신영증권이 있습니다. 둘 다 오너가 있는 증권사로 주식시장의 풍파에도 오랜 세월 장수하고 있는 대표 증권사들입니다.
대신증권과 신영증권을 지나 좀 더 가면 NH농협증권 빌딩이 있습니다. 원래 동원증권 자리였는데 동원증권은 2005년 한국투신과 한국투자증권을 인수하면서 증권업계 ‘톱3’로 뜀박질했지요. 그 자리에 NH농협증권이 들어왔는데 다 아시다시피 NH농협증권은 내년 초 우리투자증권과 합병해 자기자본 업계 1위로 올라서게 됩니다.
어떻습니까? 이쯤되면 지금의 ‘국제금융로8길’이 여의도 최고의 명당인 것 같네요. 물론 예외는 있습니다. 한국증권금융과 NH농협증권빌딩 사이에 있는 건물은 예전에 팬택이 본사로 사용했던 건물입니다. 팬텍은 경영악화로 고전을 거듭하다 결국 최근 법정관리를 신청했지요.
팬택 뿐 아니라 그 전에 이 곳에 입주했던 회사들도 말로가 썩 좋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지금은 이 빌딩을 신영증권이 사들여 패밀리오피스 등 핵심 자산관리부서들이 입주해 있는데요. 조용히 성과를 올리며 수익을 거두고 있다고 합니다. 터도 중요하지만 주인이 누군지도 중요한 모양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건물들은 대부분 한국거래소 뒤편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한국거래소 앞 도로를 기준으로 나뉘는 옛 증권가가 IFC건물이 있는 신 증권가보다는 터가 좋다는 우스개소리들을 많이 합니다. 실제로 동원증권에 인수됐던 한투증권과, 하나금융지주에 인수된 대투증권, NH농협증권에 인수될 우리투자증권이 모두 신 증권타운에 위치하고 있네요.
사실 기자도 섬(?) 출신입니다. 예전 어르신들이 입버릇처럼 “섬에 살던 사람이 밖으로 나가면 망한다”고 하셨는데요. 지금까지 여의도를 떠난 증권사는 동양증권과 미래에셋증권(을지로) 삼성증권(태평로) 등 세 곳입니다. 동양증권은 그룹 기업어음 불완전판매 등에 휘말리며 결국 대만 유안타증권에 팔렸고, 미래에셋증권과 삼성증권도 예전만 못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요. 우연의 일치일까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