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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뒷 얘기

특허 등록면허세를 도입하려 했던 안전행정부의 과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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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명 산업부 기자) 박근혜 정부의 경제정책 핵심은 ‘창조경제’입니다. 정권 출범 초기 ‘개념이 모호하다’ ‘기존 정책 짜깁기 아니냐’는 비판에도 창조경제라는 아이템을 꾸준히 추진해왔습니다. 창조경제의 핵심은 기존 산업에 기술을 융합해 새로운 혁신 역량을 갖추자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정부는 지식재산권 보호와 활용에도 적극 나서겠다는 뜻을 밝혀왔습니다.

그런데 얼마전까지 한 정부 부처가 특허에 등록세를 매기는 방안을 추진해 경제계와 산업계의 우려를 산 일이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해당 부처가 정부 내 반대에 부딪혀 과세방안을 ‘잠정 보류’하면서 조용히 넘어갔지만 언제고 다시 들고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논란을 일으킨 주인공은 안전행정부입니다. 안전행정부는 올해 초 지방세법 개정안 초안을 준비하면서 ’특허, 실용신안, 디자인 등록 면허세’를 신설하려 했다고 합니다. 왜 이런 방침을 계획했을까요?

현행 수수료·과세 체계를 알아보죠. 현재 우리나라에서 특허·실용신안·디자인 등 지식재산권을 ‘권리’로 공식 인정받기 위해선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특허청에 특허 등을 출원한 뒤 심사를 거쳐 권리설정 등록까지 마쳐야 비로소 특허권 등이 주어집니다. 이 과정에서 내야 하는 수수료와 세금도 적지 않습니다.

특허의 경우 최초 출원할 때 건당 4만6000~6만6000원의 수수료를 내야 하고 설정등록할 때 최초 3년간 1만5000원씩, 이후 25년간 매년 일정액의 수수료를 특허청에 내야 합니다. 등록 이후 25년간 내야 할 등록수수료만 최소 765만원에 달합니다. 실용신안과 디자인도 액수는 다르지만 상당한 수수료를 냅니다. 세금도 내야 하죠. 특허·실용신안·디자인을 상속받거나 남에게 양도할 때 각각 1만2000원, 1만8000원의 세금을 각 지방자체단체에 냅니다.

이 가운데 세금은 지금까지 특허, 실용신안 등을 ‘양도’ 혹은 ‘상속’을 할 때만 부과했습니다. 특허권과 같은 지식재산권은 단순히 보유하고 있다고 해서 ‘수익’을 얻는 게 아니라 돈을 받고 파는 경우에만 이득이 생기기 때문이죠.

그런데 앞으로는 새로 등록하는 특허·실용신안·디자인에 대해 수수료와 별도로 1건당 1만8000원의 면허세를 부과하겠다는 게 안행부 방안입니다. 또 상표·서비스를 새로 등록할 때 매기는 세금도 종전 1건당 7600원에서 1만8000원으로 올리는 방안도 포함돼 있습니다.

안행부 관계자는 “저작권에는 등록면허세를 매기는데, 이와 유사한 특허·실용신안·디자인에 세금을 부과하지 않고 있어 지방세제 정비 차원에서 추진하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다시 말해 비슷한 지식재산권인 저작권에는 수수료 외에 세금도 부과하니, 특허 등에도 같은 세금을 매기겠다는 것입니다.

안행부는 이 안을 마련해 올해 초 정부 부처에 의견을 구했습니다. 안행부 방침이 알려지자 특허청이 강력 반대하고 나섰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특허, 디자인 등 지식재산권은 등록할 때는 경제적 가치가 전혀 없고, 양도·이전할 때 가치가 발생하는데 등록면허세를 부과하는 건 부당하다는 점에서입니다.

또 전 세계 어느 나라도 특허 등록면허세를 부과하는 곳은 없다는 게 특허청의 주장입니다. 실제로 일본은 상표권, 특허 등을 남에게 양도해 수익을 얻을 때만 세금을 부과하고 미국도 특허 등으로 로열티 수입이 발생할 때만 소득세를 매깁니다.

또 선진국에선 특허 등 지식재산권을 활성화하기 위해 세금을 매기는 게 아니라 오히려 수수료를 깍아주고 있는데 안행부는 이와 정반대로 가겠다는 것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대통령이 애지중지하는 ‘창조경제’를 위해 지식재산권을 보호하고 출원·등록을 권장해야 할 상황에서 세금을 매긴다는 게 말이 되느냐는 지적도 내놨다고 합니다.

안행부의 과세 방침을 두고 일각에서 부족한 지방자치단체 세금을 늘리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습니다. 안행부는 이에 대해 결코 그런 의도는 아니라고 합니다. 작년 말 기준 특허·실용신안·디자인 신규등록은 28만691건. 안행부의 과세방안이 확정되면 새로 걷히는 세금은 50억원 정도에 불과하다는 점에서죠.

이런 안행부의 계획을 기자는 지난달 중순께 듣고 취재를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7월 말 기사화를 위해 막바지 취재를 하던 중 갑자기 안행부가 입장 변화를 보였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습니다. 특허청과 기업 등의 산업계와 특허청의 반발이 거세자 뒤늦게 ‘특허 등 등록면허세 신설계획을 보류하겠다’는 입장으로 돌아섰다고 합니다.

결과적으로 안행부의 특허 등록면허세 신설 계획이 보류된 건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창조경제를 한다면서 특허에 세금을 매기겠다는 공무원들의 인식에서 ‘손발’이 안맞는다는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끝)

오늘의 신문 - 2024.05.03(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