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바로가기

뉴스인사이드

성토장인 된 윤일병 사건 4차 공판

글자작게 글자크게 인쇄 목록으로

(김대훈 정치부 기자) 5일 오전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 윤 일병 사망 사건을 폭로한 군인권센터가 마련한 두 대의 버스가 시민감시단 80여명을 싣고 출발했습니다. 양주 육군 제28사단 보통군사법원 앞에 도착하자 헌병들이 인간 띠를 만들어 시민들을 통제했습니다.

법정에 들어가지 않는 게 좋겠다는 사단 측의 요청이 있었고 약간의 실랑이 끝에 방청객들이 10여 평의 좁은 법정으로 들어섰습니다. 고개를 숙인 이 병장 등 가해자들은 입을 굳게 다문 모습이었습니다.

이날 4차 공판은 싱겁게 끝났습니다. 군검찰은 가해자 이 병장(25)의 혐의에 강제추행죄를 추가한다는 내용의 공소장 변경을 신청했습니다. 재판장 이명주 대령(28사단 행정부사단장)은 검찰관의 신청을 받아들여 허가했습니다.

검찰관은 “사건 발생일인 4월 6일 윤 일병의 가슴 부위 등에 안티푸라민을 바르다가 윤 일병 본인에게 강압적으로 안티푸라민을 성기에도 바르도록 한 행위를 강제 추행으로 판단했다”고 말했습니다. 4일 한민구 국방장관이 밝혔던 것처럼 다음 재판부터 3군사령부가 주관하도록 소관을 변경키로 했습니다.

이날 재판을 방청한 시민들 중에는 중년 여성들이 많았습니다. 이들은 재판이 끝나고 재판관과 변호인이 퇴장했음에도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습니다. ‘재수없게 걸린 게 아니라 진짜 잘못하신 거에요. 어떻게 얼굴을 그렇게 뻔뻔히 들고 있어. 간부들이 문제야. 이 병장이 아버지가 대단한 분이라고 했답니다. 뭐가 대단한 분이야 조폭? 계급 사회가 때리는 데야? 어떻게 한달 동안 애를 그렇게 할 수가 있어?’

가해자들에게 성토가 이어졌습니다. 20대 초반의 앳된 모습의 가해자들은 마무 말도 없었습니다. 헌병대가 이들을 모두 퇴장시키기까지 10여분이 걸렸습니다.

부천에서 온 김민식 씨, 김미옥 씨 부부는 앞으로 군에 입대할 각각 고등학생과 대학교 1학년인 두 아들이 있어 남의 일 같지가 않다고 했습니다. 김민식씨는 “피해자고 가해자고 모두 내 자식 같다. 안타까운 마음을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그렇지만 벌은 줘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했습니다.

김율씨(27·여)는 함께 취업 스터디를 하는 2명의 친구들과 함께 버스를 탔습니다. “스물한 살이 된 남동생이 있다. 이번 일이 터니니깐 누나 입장에서 오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이날 피해자 가족들은 재판에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군도 시민들을 최대한 자극하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이었습니다. 권동선 28사단 정훈공보참모(중령)은 “국방부 추가 조사를 거쳐 살인죄 추가 적용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재판을 방청한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28사단이 애초에 재판을 제대로 진행할 의지가 없었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군 형법상 사단장이 임명하는 일반 영관급 현역 군인이 재판장을 맡습니다. 이번 사건을 담당하는 이명주 대령은 28사단 부사단장이고, 검찰은 부임 후 처음으로 사건을 맡은 신참입니다. 세간의 이목이 집중된 일반전초(GOP) 총기난사 사건 당시에는 인근 사단에서 군 검찰과 법무관이 총동원돼 수사와 재판을 진행한 바 있습니다.

임 소장은 “감찰 대상이 돼야 할 사단장이 임명한 사람이 재판을 결정한다는 것은 사단장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는 걸 의미한다“며 ”군사재판을 민간 법관이 맡거나 군사 재판 자체를 없애는 방식으로 법 개정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또 “심각한 사망사고가 났는데 지휘체계에서 사실을 제대로 보고 받지 못했다는 것 자체가 직무유기“라며 ”살인죄 추가 등을 하지 않을 땐 특검을 실시해 군대의 뿌리 깊은 악습을 철폐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80여명의 시민들은 여기 저기 멍이 들어 숨진 윤 일병을 기리는 마음에서 보라색 종이비행기를 날렸습니다. 법원 정문 앞에 메모를 추모의 의미를 담은 리본을 달았습니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서울 성수동에서 왔다는 김모씨(53)는 기자에게 인터넷 게시물을 소개했습니다. “폭발하니 임 병장이 되고, 참으니 윤 일병처럼 될 수밖에 없는 게 군대라고 합니다.” (끝)

오늘의 신문 - 2024.07.06(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