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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리우드의 '코닥 일병 구하기' 성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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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라 국제부 기자) "코닥(Kodak)스럽다."

헐리우드 영화의 황금기를 함께해온 필름회사 코닥은 이제 몰락의 아이콘이 됐습니다. 디지털 카메라를 제일 먼저 개발하고도 혁신을 하지 않아 결국 경쟁업체에 뒤쳐졌기 때문인데요. 실리콘밸리에서 '코닥스럽다'는 말은 '옛것만 고집하다 망한다'는 뜻으로 쓰이게 됐습니다. 코닥은 2012년 1월 파산보호 신청을 했고, 20개월 동안 기업 회생 절차를 밟았습니다.

그런데 코닥에게 보내는 작별인사는 잠시 미뤄야 할 것 같습니다. '영화용 필름' 사업을 살리기 위해 미국 영화사 연합과 유명 감독들이 힘을 합쳤기 때문입니다. 영화사들은 최근 비공개로 협상한 결과 향후 몇 년간 일정 물량의 필름을 약정 방식으로 구매하기로 했습니다.

영화 촬영 및 편집이 모두 디지털로 전환되면서 코닥의 영화 필름 판매량은 지난 10년간 96% 급락했습니다. 우리나라도 디지털 영사 장비가 보급된 지 5~6년만에 모든 극장이 100% 디지털화 됐죠. 작년에는 코닥의 유일한 경쟁사였던 일본 후지필름이 아예 필름 사업을 접으면서 홀로 남게 됐습니다. 올들어 미국 뉴저지주 필름 공장도 문 닫기 일보직전까지 갔습니다.

코닥의 구세주로 등장한 건 헐리우드 영화 감독들입니다. 영화 '킬빌', ‘저수지의 개들’의 쿠엔틴 타란티노, '배트맨 시리즈'의 크리스토퍼 놀란, JJ.에이브라함스 등 유명 감독들은 코닥을 살리기 위해 영화사를 상대로 적극적인 로비를 펼쳤습니다.

놀란 감독은 원래 3차원 입체영상 기술이나 CGI를 사용하지 않고도 필름 카메라 한 대로 대작을 만들어내는 사람으로 유명합니다. 타란티노 감독도 이름난 필름 애호가이고요. 이들은 "필름이 없어지면 영화를 안 찍겠다"고 제작사에 생떼를 쓰곤 했습니다. JJ.에이브라함스 감독은 현재 촬영 중인 '스타워즈 에피소드7'을 필름으로 제작하고 있습니다.

거장들의 이같은 필름 사랑은 메이저 영화사들의 시장 논리를 꺾었습니다. 코닥은 현재 워너브러더스, 유니버셜픽처스, 파라마운트, 월트디즈니 등 대형 스튜디오들이 코닥과 정식 계약에 앞선 협상을 벌이고 있습니다. 코닥의 올 예상 매출액은 약 22억 달러. 이번 협상이 완료되더라도 이 중 필름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10%도 채 되지 않을 전망입니다.

코닥 관계자들은 그러나 “필름 공장이 문을 닫게 되면 코닥이 명성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해온 시간이 모두 물거품이 될 것”이라며 “필름의 가치를 재조명한 것만으로도 이미지 쇄신에 도움이 됐다”고 말합니다.

헐리우드 관계자들은 "메이저 스튜디오들이 코닥 회생을 돕기로 마음을 굳히게 된 한 마디는 따로 있다"고 말합니다. 바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지난 2월 아카데미 기술과학상 시상식 연설에서 했던 말입니다. 그는 담담한 표정으로 이런 말을 남겼고,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

"필름 기술자들은 지난 100년을 어두운 방에서 살아온 연금술사다. 필름은 우리의 꿈을 극장으로 옮기는 마법의 주인공이었고, 디지털 시대에도 영원히 영화의 본질이자 표준으로 남을 것이다." / destinybr@hankyung.com

오늘의 신문 - 2024.05.08(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