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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 새옹지마(塞翁之馬)…승자와 패자의 희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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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성태 정치부 기자,국회반장) ‘선거에 2등은 없다’는 말이 있다. 승자독식의 선거법칙보다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이기는 것에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게 이 말의 진짜 취지이다.

현역 최다선(7선) 기록을 갖고 있는 정몽준 전 의원과 서청원 의원은 뼈저리게 ‘2등의 비애’를 느끼고 있을 법하다.

정 전 의원은 친박주류의 견제를 뚫고 서울시장에 도전했지만, 박원순 시장의 벽을 넘지 못했다. 서 의원은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김무성에 무릎을 꿇었다. 서 의원의 패배는 새까만 정치후배를 당 대표로 모셔야 하는 개인적 굴욕 차원을 넘어 집권당의 권력지형이 탈(脫)친박으로 넘어가는 상징적 사건으로 평가된다. 둘의 입지와 나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재기 시나리오’를 떠올리기가 현재로선 쉽지 않다.

차기 대선주자 그룹에서 여야통합 1위였던 정 전 의원은 정치 인생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그는 최근 여론분석기관 리얼미터의 대선주자 선호조사에서 문재인(15.5%), 박원순(15.2%),김무성(13.4%), 안철수(10.7%)에 이어 5위(10.3%)권으로 밀려났다. 둘의 패배 후 치러지는 7.30 재보궐선거는 거물정치인의 위상추락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여야가 치열한 혈투를 벌이는 선거판에서 둘은 존재감은 고사하고, 행적을 찾기조차 힘들다. 정 전 의원이 2선을 지낸 서울 동작을은 15개 선거구 중 가장 ‘핫(hot)’한 곳으로 꼽힌다.하지만, 당은 물론이고 나경원 후보 캠프에서도 적극적으로 정 전 의원을 찾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나 후보와 함께 한두 차례 지역구를 돈 게 전부였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박원순 표’가 더 많이 나온 상황에서 오히려 역효과를 우려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서 의원도 이번 이번 선거에서 존재감이 희미하기는 마찬가지다.

정치에서 가정은 호사가들의 ‘가십성’ 소재일 뿐 큰 의미가 없다. 하지만, 정 전 의원과 서 의원이 완주를 하지 않고 또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땠을까.

정 전 의원은 세월호 참사 후 막내 아들이 SNS(쇼셜네트워크 서비스)에서 ‘국민 미개인'발언을 하는 바람에 곤욕을 치렀다. 자신이 여러 차례 대국민 사과를 했지만, 한번 꺾인 상승세는 끝내 회복되지 않았다. 이 때 친박주류들이 노골적으로 밀었던 김황식 전 총리에게 서울시장 후보직을 양보했다면 어땠을까. 실제 새누리당내에서는 이런 논의가 있었다.

대선주자 1위였던 정 전 의원은 선당후사(先黨後私)로 중진차출에 응했다는 명분도 얻고, 스스로 아들 실언에 도의적 책임을 짐으로써 대선주자로서 입지를 더 굳힐 수도 있었다는게 정치권 분석이었다. 김 전 총리를 거쳐 박 시장과 막판 네거티브 선거전을 불사하면서 그의 정치적 자산인 ‘신사이미지'도 크게 훼손됐다는게 여론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선거패배 이외에도 그는 많은 것을 잃었다.

서 의원은 당내 유일한 ‘김무성 대항마’로서 등 떠밀려 전당대회에 출마했다는 게 정설이다. 물론 친박좌장인 자신이 당권을 잡아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힘을 보태겠다는 충정심도 어느정도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무대(무성대장)‘김 의원을 상대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지방선거 후 비박계들이 김 의원을 중심으로 똘똘 뭉친 반면 구심점을 잃은 친박계의 이탈이 본격화되는 상황에서 서 의원은 무력감을 느꼈을 것이다. 지난 4월말께 서 의원이 당권보다 국회의장 경선출마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는 소문이 돈 것은 이러한 배경때문이었다.

결과적으로 둘은 최선은 아니더라도 차선이 됐을 선택지를 집어들지 않았다. 둘의 완주엔 개인적 결단 외에 공통적으로 부인들의 조언도 일부 영향을 미쳤다고 호사가들은 전한다.

정 전 의원은 지난해 12월께까지는 당내에서 서울시장 후보 차출론이 제기될 때마다 버럭 화를 냈다. 차기 대선후보 1순위인 그가 서울시장에 출마할 경우 득(得)보다 실(失)이 크다는 게 캠프 판단이었다. 무엇보다 경쟁자인 박 시장처럼 그도 출마는 마지막 기회가 될 수 있는 대선 포기가 전제돼야 한다. 당내 경선을 거쳐 본선까지 승승장구할 것이란 확신도 없다. 한번만 삐긋하면 정치적 위기를 자초하는 셈이다.

서울시장 불출마 입장을 고수했던 그에게 심경의 변화가 나타난 것은 올 초부터다. 그는 “고민하고 있다"는 말로 출마 의향을 슬쩍 내비치곤 했다.사석에서 “집사람이 이제 대선꿈을 접고, 서울시장을 2번정도 하는 게 어떠냐"고 권유했다는 말을 전하기도 했다. 출마 구실을 찾기 위한 단순한 말치레였을 가능성이 없지 않지만,그는 결과적으로 완주-완패의 길을 택했다.

서 의원이 국회의장 경선 쪽으로 방향을 틀게 된 배후인물 역시 부인인 이선화 여사가 지목됐다. 당대표에 비해 ‘국가의전 서열 2위’인 국회의장의 비교우위설과 함께 ‘옥바라지'까지 한 이 여사의 간곡한 권유 등이 가미되면서 서 의원의 당권포기설은 설득력있게 퍼져나갔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서 의원은 자신의 명분을 좆은 후 큰 표차로 패했다. 전당대회 후 폭음과 병원행에 이어 강원도로 일주일여 요양을 떠나는 것 등으로 그의 심리적 충격을 일부나마 짐작하게 된다.

일각에서는 정치적 명운을 건 승부에서 패배한 두 거물정치인을 ‘흘러가는 물’에 비유하는 이도 있다. 하지만 둘은 그동안 승리 못지 않게 수 많은 패배와 정치적 위기를 돌파하면서 7번의 뱃지를 달았다. 둘의 재기 스토리가 어떤식으로 전개될지 떠올리기는 쉽지 않지만, 분명한 것은 정 전 의원도 서 의원도 한 번의 패배로 주저앉을 위인들은 아니라는 것이다.(끝)

오늘의 신문 - 2024.05.07(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