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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뒷 얘기

암참 행사장의 VIP석 벨트차단봉은 대체 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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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아 산업부 기자) “개인적인 명함 교환은 하실 수 없습니다. 행사 시작 전 일대일 질문도 안 되시고요. 질의응답 시간에도 기자님들은 질문하실 수 없습니다.”

주한 미국상공회의소(암참)에서 미국 측 유명인사를 초청해 간담회를 열 때마다 늘 취재기자들에게 하는 말입니다. 기자 입장에선 현장에 갔으니 당연히 그 날의 ‘주인공’과 한 마디라도 대화를 나누고 싶지요. 하지만 암참 행사에서 그런 요청은 통하지 않습니다. 그저 “노(No)”라는 단호한 답만 돌아올 뿐이지요.

암참 주최 간담회에 참석할 때 개인적으로 가장 낯선 풍경은 VIP석 바로 뒤에 설치된 벨트차단봉입니다. 지난 24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열렸던 토머스 도너휴 미국 상공회의소 회장 간담회 때도 어김없이 벨트차단봉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암참 및 암참에서 초청한 인사들, 그리고 회원사에서 온 임직원들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그 차단봉 너머로 건너갈 수 없습니다. 기자들도 당연히 그 차단봉 너머의 사람들과는 직접 만나는 게 불가능합니다. 암참 측에서 엄격히 통제하기 때문입니다.

그 날도 현장 취재 기자들은 도너휴 회장과 말 한 마디 주고받을 수 없었고, 눈 한 번 마주칠 수 없었습니다. 그저 현장에서 연설문을 배포받고, 연설이 끝난 후 도너휴 회장과 암참 회원사 임원들 사이에 오간 약간의 질의응답 내용만을 들을 수 있었죠.

행사장 뒤편 ‘프레스(Press, 취재진)’라고 표시된 테이블 두 개에 앉아 있던 국내 언론 기자들 사이에선 “우린 그냥 받아쓰기 하러 오라고 한 걸까요?”, “저 차단봉 넘어 가면 진짜 잡아 갈까요?”, “오늘도 기사는 다 똑같이 나오겠네요” 등등의 자조 섞인 말들이 나왔습니다.

암참 행사를 본 외신 기자들조차도 상당히 의아해 했습니다. 한 외신기자는 “미국에서 저렇게 취재 차단하는 건 아마 존 케리 국무장관 간담회 정도는 돼야 할 텐데”라며 ‘뼈 있는 농담’을 했습니다.

도너휴 회장은 한국 정부를 향해 규제 완화의 필요성과 한·미 동맹 강화를 역설했습니다. “한국이 진정 어려울 때 도움이 돼 줄 파트너는 60여년 우방국인 미국 뿐”이라고도 말했습니다.

그의 연설을 들으면서 VIP석의 벨트차단봉을 건너다 봤습니다. 차단봉 너머의 테이블은 완전히 딴 세상 같아 보였습니다. 우방국의 상공회의소라 하기엔 순간적으로 너무나 멀리 느껴졌습니다. 제가 ‘한국의 프레스’였기 때문에 느낀 묘한 감정일 뿐이었을까요? (끝)

오늘의 신문 - 2024.05.03(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