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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뒷 얘기

북한 응원단을 향한 싸늘한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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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부 전예진 기자) '오지마 거지들아. 세금 아깝다.'

북한이 인천 아시안게임에 선수단과 응원단 파견을 재검토하겠다는 기사에 달린 댓글 중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글입니다. 네이버, 다음 할 것 없이 주요 포털 사이트에 올라온 댓글의 95%가 이런 내용입니다. ‘북한 선수단, 미녀 응원단 다 필요 없다. 북한이 안 오는 것이 도와주는 것이다. 북한이 너무 싫다’는 글에는 5400여명이 추천을 눌렀습니다.

북한이 연일 미사일을 쏘고 우리를 비난해도 이 정도로 조롱하고 비하하는 악플은 없었던 것 같은데, 반북감정이 극에 달한 모습입니다. 북한은 선심 쓰듯 대규모 응원단을 보내겠다며 평화공세를 폈는데, 반응은 싸늘하기만 합니다. 예정대로 북한 선수단이 오게 되면 분위기가 어떨지 벌써부터 걱정스러워집니다.

남북은 아시안게임 실무협상을 시작하자마자 삐걱대고 있습니다. 올 초 이산가족상봉을 어떻게 치렀을까 의문이 들 정도입니다. 지난 17일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 실무접촉에서 북한이 화를 내며 회담장을 뛰쳐나간 것만 봐도 그렇습니다.

어디서부터 무엇이 어떻게 잘못된 것일까요?

위에서 언급한 댓글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애초부터 우리는 북한을 ‘돈’먹는 불청객이라 여겼던 것이죠. 이런 생각이 협상 테이블에서 고스란히 전달됐고 북한의 자존심을 건드린 겁니다.

실무협상에서 오간 얘기들을 종합해 보면, 북한은 총 700명의 역대 최대 인원을 파견하겠다면서 우리 측에 ‘편의를 제공해달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북한도 다른 국가와 마찬가지로 국제적 관례에 따라야 하는 게 기본 원칙”이라면서 “비용 부담은 추가적으로 협의해서 결정하겠다”고 ‘생색’을 냈습니다.

북한은 옛날처럼 우리가 북한 선수단과 응원단의 숙식비, 교통비부터 유니폼, 가방, 응원도구까지 모든 비용을 다 지원해주길 바랬을 텐데, 달라진 태도에 적잖게 당황했던 모양입니다.

북한이 의도하지 않았는 데도 우리가 대형 국기를 들면 안된다고 지적한 것도 북한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습니다. 대형 공화국기(인공기)와 한반도기가 비춰지면 국민 정서상 보기 좋지 않기 때문인데, 이런 규정을 언급하면서 훈수를 두다 보니 비협조적으로 비춰졌을 겁니다.

여기에다 당국간 협의해야 한다며 오후 회담을 2시간 이상 지연시켰으니, 북한은 폭발 일부 직전이었던 것이죠. 가뜩이나 협상권이 제한돼서 답답한 북측 대표단이 우리 측의 고압적 태도를 이겨내지 못했을 것이란 분석도 나옵니다.

일각에서는 경비 문제로 인색하게 굴 것이 아니라 정부가 통 크게 나서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주장을 폅니다. 한민족인 북한에 대해 다른 국가와 똑같은 규정을 적용하는 것도 비인도적인 처사라는 지적을 받을 수 있습니다. 비용 지원이 불가피하다면 생색을 내기보다 도와주는 마음으로 기분 좋게 털고 가는 거도 방법입니다.

외교적으로도 우리는 북한과 관계 개선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북한이 경제적 고립을 탈피하기 위해 일본 러시아와 손을 잡고 있는데 정작 우리만 북한과 등을 돌리고 있는 형국이기 때문입니다.

북한과 관계가 단절되면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데 다른 국가에 의존해야 하고 결국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위치도 흔들리게 됩니다. 북한에 대한 여론이 더 나빠지기 전에, 서로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고리를 찾는 게 시급해 보입니다. (끝)

오늘의 신문 - 2024.05.01(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