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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전선 대한방직 대한제당의 엇갈린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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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현 증권부 기자) 대한전선 대한방직 대한제당은 원래 대한그룹으로 한 몸이었습니다. 승계 후 뿔뿔이 흩어진 세 기업의 운명은 극명하게 갈렸습니다. 잘 나가던 대한전선은 매각을 앞두고 있고 한물 갔다고 여겨진 대한방직과 대한제당은 안정적인 경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병철 삼성 창업주가 삼남인 이건희 회장에게 대권을 물려줬듯이 설경동 대한그룹 창업주도 삼남에게 그룹의 알짜인 대한전선을 넘겨줬습니다. 지금은 재계 서열 상위권에서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지만 1960년대만 해도 대한그룹은 재계 서열 5위였습니다. 현재 순위로 보면 롯데그룹과 같은 위상이었던 셈이죠.

대한전선 뿐 아니라 무역업을 하던 대한산업과 대한방직, 대한제당을 거느리고 있었습니다. 설 창업주는 1976년 타계하기 전 네 아들에게 사업체를 하나씩 나눠 맡겼습니다. 계열분리로 독립을 시킨 것이죠. 장남 원식씨가 대한방직, 차남 원철씨는 대한산업, 삼남 원량씨는 대한전선, 사남 원봉씨는 대한제당을 맡아 경영하게 했습니다.

당시 대한그룹에서 대한전선은 삼성으로 치면 삼성전자였습니다. 삼남인 설원량 회장이 아버지의 실질적인 후계자로 인정받은 것입니다. 그에 보답하듯 설원량 회장은 대한전선을 잘 키웠습니다. 대한전선은 한때 25개까지 계열사를 거느렸고 2000년대 중반까지 국내 전선업계 1위 자리를 지켰습니다. 창업 후 53년 간 무(無)적자 경영도 이어갔습니다.

그러나 2004년 설원량 회장이 갑자기 사망한 이후 사세는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무분별한 인수합병 후유증을 겪으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유동성 위기는 심화됐습니다. 결국 지난해 10월 창업 3세인 설원량 회장의 아들 설윤석 사장은 경영권을 포기했고 대한전선은 매각작업이 진행 중입니다.

50년 전 재계를 호령했던 대한그룹 3사의 ‘오늘’은 희비가 엇갈렸습니다.

한물간 산업으로 취급받던 대한방직과 대한제당은 3세 경영으로 이어졌고 올 들어 주가도 큰폭으로 올랐습니다. 대한방직은 올 들어 주가가 60% 가까이 올랐습니다. 지난 11일엔 2만9200원으로 최근 1년래 최고가 기록도 세웠습니다. 대한제당도 연초 대비 37% 상승했습니다. 환율하락으로 원재료인 원당 가격 하락 수혜를 입은 덕분입니다.

반면 대한전선 주가는 5년 전에 비해 50분의 1로 쪼그라 들었습니다. 2009년 10만505원으로 최고가를 찍기도 했던 대한전선(1945원)의 주가는 현재 2000원도 안 됩니다. 승계작업이 이뤄졌던 1960년대와 1970년대엔 상상도 할 수 없었을 3사가 직면한 오늘의 현실입니다.

대기업 뿐 아니라 중견기업들도 3, 4세로의 경영 승계 작업이 속속 진행되고 있습니다. 대한그룹의 사례로 보면 회장 ‘아버지’의 고민은 더 깊어질 것 같습니다. 리더십과 미래를 내다보는 통찰력도 키워야겠지만 어떤 스트레스도 견딜 수 있는 맷집과 건강, 그리고 어떤 위기상황에서도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는 관리 능력도 중요하다는 것이 피부로 와닿는 가장 가까운 사례 아닐까요. (끝)

오늘의 신문 - 2024.05.18(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