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에버랜드가 26일 제일모직으로 이름을 바꾸겠다고 발표하자, 증권시장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반문했습니다.
현재 제일모직은 한국거래소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돼 있는 회사입니다. 26일 종가 7만200원으로 시가총액이 3조8069억원에 달합니다. 1954년 설립돼 1975년 5월 상장한 이 회사는 케미칼사업, 전자재료사업을 영위하고 있죠. 패션사업도 있었지만 작년 12월1일 삼성에버랜드에 팔았습니다.
이름의 유래인 모직사업은 지난 1990년대 없앴고, 패션사업마저 팔았으니 사명이 더 이상 어울리지 않습니다. 게다가 이 회사는 다음달 1일이면 계열사인 삼성SDI에 합병됩니다. 제일모직이란 이름이 거래소에서 사라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건 잠시입니다. 다음달 4일 관계사인 삼성에버랜드가 주주총회를 열어 제일모직 이름을 이어받습니다. 이런 삼성에버랜드는 지난 3일 상장 계획을 발표하고 주관사를 정하는 등 절차를 밟고 있죠.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내년 1분기면 제일모직이란 이름의 회사가 다시 상장돼 시장에 돌아오게 됩니다.
문제는 지금 거래되는 제일모직과 9개월 뒤 등장할 제일모직이 완전히 다른 회사라는 점입니다. 내년에 거래소에 재등장할 제일모직은 건축 토목 조경 부동산서비스업을 하는 건설사업, 테마파크와 골프장을 운영하는 레져사업, 패션제품의 제조와 판매 등 패션사업을 하고 있는 지금의 삼성에버랜드죠. 삼성그룹의 실질적 지주회사이기도 합니다.
1975년부터 2014년까지 40년간 거래소에서 매매되며 투자자들 머리 속에 각인된 패션모직회사 제일모직과는 다르지만 이름은 똑같습니다. ‘제일모직’ 이름을 두고 투자자들이 상당기간 헷갈릴 수도 있다는 게 증권가의 시각입니다.
이런 혼란이 예상되는데도 삼성은 왜 제일모직이란 이름에 집착할까요? 그건 아마도 창업주인 호암 이병철의 제일모직에 대한 애착 때문일 겁니다. 제일모직은 삼성 관계사 중 유일하게 이 창업주가 대표이사로 재직(1954~1971)한 회사입니다. 호암은 1987년 영면할 때까지 제일모직 등기이사로 등재돼 있기도 했습니다.
이 창업주는 자서전인 호암자전에서 “제일이란 이름은 알기 쉽고 부르기 쉽다는 이유도 있지만, 은근히 다짐한 결의와 큰 기개를 사명에 담았다. 무슨 일에나 제일의 기개로 임하자는 뜻, 앞으로 항상 한국 경제의 제일주자로서 국가와 민족의 번영에 크게 기여해 나가자는 뜻”이라며 이름을 지은 이유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어찌보면 제일모직 이름을 돌고 돌린 건 삼성그룹의 연속된 지배구조 개편 탓에 불거진 해프닝이라고 봐도 되겠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