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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세청의 '아파트 부가세 회수 소송' 어떻게 진행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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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병훈 지식사회부 기자) 돈을 누구에게 전달하라고 심부름을 시켰는데 심부름꾼이 중간에서 슬쩍 챙기는 걸 ‘배달 사고’라고 하죠. 검은 돈이 왔다갔다 하는 등 자금이 투명하게 처리되지 못하는 곳에서 자주 벌어지는 일이라고 합니다.

지난 12일 한국경제신문이 ‘어디로 사라졌나…입주 예정자들이 낸 아파트 부가세 1조3000억’ 기사를 단독 보도했습니다. 아파트 등 건물을 분양받은 일반 소비자는 분양대금을 내며 부가가치세분까지 정확히 계산해서 계좌(시공사 또는 신탁사 명의로 개설)에 넣었는데 그 부가세분이 국고로 들어오지 않고 계좌 주인의 수입으로 흡수됐다는 내용이었죠.

말하자면 ‘배달 사고’입니다. 국세청은 이렇게 사라진 부가세가 1조3358억원에 달한다고 보고 소송을 통해 회수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돈을 원래 목적지였던 국고로 갖고 오겠다는 거죠. 일부 시공사·신탁사에 대해서는 횡령으로 형사 고발까지 할 생각이라네요.

국세청의 현재 소송 스코어는 1승0패입니다. 한국토지신탁을 상대로 소송을 해서 지난달 이겼습니다. 한국토지신탁이 항소했지만 사실관계를 크게 다투지도 않고 있고 국세징수법과 민법상의 법리가 명백해 뒤집힐 가능성이 높지 않아보입니다. 그리고 다음달에는 대림산업을 상대로 한 소송의 선고가 나옵니다. 그런데 대림산업 소송은 국세청이 패소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대림산업 소송의 결과가 불투명한 건 소멸시효 문제가 복병으로 걸려 있기 때문입니다. 서울 방배동의 e편한세상 아파트 분양사업이 ‘문제의 분양사업’입니다. 국세청은 이 분양사업의 시행사였던 동주흥산과 비젼베이스(현재 폐업)에 2006년 9월에 부가세 고지를 했습니다.

그런데 국세청이 낸 소송은 동주흥산과 비젼베이스가 시공사인 대림산업에 대해 갖는 ‘부가세 정산 채권’을 대신 행사하겠다는 거여서 회사간 채권(상사채권)에 관한 법 조항이 적용됩니다. 상사채권 소멸시효는 5년이고 국세청은 세금을 고지한 뒤 5년이 지난 지난해 소송을 냈습니다. 법원이 채권의 시효가 끝났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 분양사업의 부가세 체납액은 38억8000여만원인데 패소하면 이 돈을 국고로 가져올 수 없게 되는 거지요.

국세청도 채권이 살아있다고 주장하는 나름의 논리는 있습니다. 국세청은 동주흥산과 비젼베이스에 부가세를 고지하고 한달 뒤인 2006년 10월에 이 채권을 압류했습니다. 때문에 국세청은 이 소송에서 “채권을 압류했을 때부터 시효가 중단됐다”고 주장했습니다. 권리에 대한 소멸시효는 해당 권리를 가진 사람이 그걸 행사하면 그 시점부터 중단되거든요. 그런데 이것도 그리 간단치 않습니다.

엄밀히 말해서 국세청이 압류한 채권의 ‘채권자’는 국세청이 아닙니다. 동주흥산과 비젼베이스가 채권자고 대림산업이 채무자입니다. 그렇다면 동주흥산과 비젼베이스가 대림산업에 대해 권리를 행사해야 시효가 중단됩니다. 국세청이 채권을 압류한 것을 ‘채권자의 권리 행사’라고 해석할 수 있을지가 이 소송의 결과를 결정할 것으로 보입니다.

법원이 청구를 기각하면 국세청은 ‘우회로’를 통해 체납액을 다시 청구할 생각이라고 합니다. 바로 ‘압류채권 훼손’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내는 방법입니다. “시행사와 시공사가 분양대금을 마음대로 다 써버려서 내가 압류한 채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됐다. 그러니 내 압류채권에 상당하는 금액을 물어내라”하는 논리죠.

그런데 만약 이 소송에서도 국세청이 패소하면 현실적으로 걷을 수 있는 방법이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 사건 말고도 세금을 고지한지 5년이 넘은 게 있는데 이런 사건도 패소할 가능성이 높아지겠죠. 이렇게 되면 결국 국세청이 회수 목표로 잡은 금액도 1조3358억원에서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겠네요.

한가지 덧붙이자면, 대림산업 사건에서 시행사의 제무재표 상으로는 부가세가 납부된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국세청은 부가세를 받은 적이 없죠. 말 그대로 부가세가 ‘증발’한 거죠. 이 사건은 다음달 4일에 판결이 나옵니다. 결과를 지켜봐야겠네요. (끝)

오늘의 신문 - 2024.05.18(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