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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서 정보관 "인터넷 때문에 못해먹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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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선표 지식사회부 기자) “홍 기자, 요즘 신문사들도 인터넷 때문에 힘들지? 우리도 똑같아. 옛날에는 우리가 갖다주는 정보가 다 였는데… 요샌 인터넷이다 뭐다 정보가 너무 많아 문제야.”

경찰서를 출입하는 경찰 기자이다 보니 매일 여러 명의 경찰을 만나 얘기하지만 그 중에서도 정보관들을 자주 만나게 됩니다. ‘아이오’(IO·Intelligence Officer)라고도 불리는 정보관들은 각 경찰서 정보과에 소속돼 관할 지역에 있는 각종 기관들을 돌아다니며 정보를 수집·취합하고 이를 상부에 보고하는 일을 합니다.

보통 서울 지역에 있는 경찰서에는 이런 정보관들이 경찰서마다 15명씩 있고, 각 지방경찰청과 경찰청에서도 별도의 정보 조직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전국적으로 외근직 경찰 정보관의 수만 2000명이 넘고 275개 주요 정부부처와 공공기관을 출입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정보관들을 만나면 가장 자주 하는 말이 “기자와 정보관은 똑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말입니다. 대학, 시민단체, 구청 등 각자가 담당하는 출입처를 배정받고 출입처 사람들과 계속해서 만나며 들은 이야기를 기사로 쓰느냐 아니면 정보보고서를 만드느냐만 다를 뿐 ‘업의 본질’은 같다는 말이지요.

그래서인지 정보관들을 만나면 형사과나 수사과 소속 경찰관들과는 달리 기자에게 친근하게 대하는 편입니다. 아무래도 둘 다 ‘정보’를 먹고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대화를 나누다 보면 서로 도움이 될 때가 많아서이지요.

영화에서처럼 어두컴컴한 술집 한구석에 국정원 요원, 경찰 정보관, 대기업 정보팀, 기자 등이 모여앉아 ‘음모’를 꾸미거나 하는 건 아니지만 가끔 소주 잔을 기울이며 사회적 이슈 이야기나 ‘기사꺼리’, ‘보고꺼리’에 대해 얘기하곤 하죠.

전국에 있는 모든 경찰서에 배치돼 있는 정보관들은 현장의 민심과 사회적 이슈를 정부에 전달하는 모세혈관 역할을 합니다. 일선 경찰서에서 활동하는 정보관들은 대개 ‘동’별로 담당 구역을 나눕니다. 매일 같이 동네를 돌아다니며 정보를 수집하다 보니 지역에서 일어나는 대부분 일에 대해 속속들이 알 수밖에 없지요.

얼마 전 만난 한 정보관은 “손님을 빼앗긴다며 서로 머리 터지게 싸우던 포장마차 아줌마와 동네 식당 주인 아저씨가 최근 서로 사귀는 눈치”라며 “노점상 집회에 투입됐던 우리 경찰서 정보관이 술자리를 주선했는데 그때부터 두 사람이 사귀게 된 거 같다”고 웃으며 말하기도 했습니다.

세월호 침몰 사고와 같은 대형 사고부터 동네에서 일어나는 임금 체불 문제, 노점상과 인근 식당 주인 간의 다툼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분쟁에는 정보관들이 관여하고 있습니다.

저와 친한 한 정보관은 임금 체불 문제를 둘러싸고 건설회사와 근로자들 사이에 벌어졌던 임금 체불 문제를 조정했던 사례를 들며 “건설회사 회장과 민주노총 지부장 사이를 수없이 오가면서 물리적 충돌없이 사건을 마무리지었다”고 뿌듯해하기도 했었습니다. 정보관 한 명이 분쟁 당사자들을 잘 설득하기만 해도 기동대 몇 개 중대가 투입돼야할 집회·시위까지 상황이 악화되는 걸 막을 수 있다는 게 정보관들의 설명입니다.

언론에 보도돼 문제가 되기도 했듯이 세월호 침몰 사고 유가족들이 모여 있던 진도체육관과 팽목항에도 수많은 정보관들이 내려가 급박한 현장 상황과 민심을 시시각각 사회에 보고했었구요.

보통 정보 경과는 다른 여러 경과들 중에서도 승진이 빠르고 고위직에 오르기 유리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청와대와 미국 대사관, 일본 대사관, 정부종합청사 등 주요 기관들이 몰려있고 집회·시위가 끊이지 않는 종로경찰서 정보과장과 국회를 끼고 있는 영등포경찰서 정보과장은 서울지역 경정급 보직 중에서도 핵심 보직으로 꼽힙니다. 어청수 전 경찰청장과 이철규 전 경기지방경찰청장도 종로서 정보과장을 거쳐갔었죠.

이렇듯 힘세고 인기있는 정보과였지만 요즘 정보관들을 만나 보면 ‘이제는 우리도 끝물이다’라는 말이 많습니다. 정보가 제한됐던 과거와 달리 인터넷을 통해 누구나 쉽게 정보를 구할 수 있게 됐기 때문에 정보관들이 올리는 정보보고의 중요성이 떨어졌다는 거지요.

국회를 중심으로 국정원 정보관들의 국가기관 출입을 제한하는 법안이 논의되고 있는 상황도 경찰 정보관들의 운신의 폭을 좁히고 있구요.

90년대 말부터 계속 정보 분야에만 있었던 한 정보관은 “경찰 정보에 호되게 당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정권을 잡은 뒤 경찰 정보 기능을 크게 약화시켰다”며 “평택 미군기지 이전 반대 시위가 격화된 다음에야 참여정부도 경찰의 밑바닥 정보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닫게 됐다”고 털어놨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가 외국처럼 경찰관 한 명이 집회에 참가한 수십명을 통제할 수 있는 선진국이 되지 않는 이상 집회·시위 관련 첩보를 주로 입수하는 정보관들이 꼭 필요한 거 아니냐”고 반문하기도 했죠.

저 역시 대학생 시절 학생회실을 찾아오는 늙수그레한 정보관 아저씨들을 보며 ‘사찰 아니냐‘는 불편함을 가지기도 했었죠. 다만 매주 주말도 없이 집회·시위에 투입되고 일주일에 한편씩 제출해야 하는 정책보고서에 시달리는 정보관들을 모습을 보면 ‘검은 정장을 차려입고 선글라스를 쓴’ 정보기관 요원의 모습과 현실은 다르다는 생각이 드네요. (끝)

오늘의 신문 - 2024.03.02(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