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은 이날 주요 당직자회의에서 문 내정자의 문제 발언이 담긴 1시간10분가량 영상물을 함께 시청한 후 “청문 기회를 주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문 후보자가 안대희 전 대법관에 이어 청문회에 서 보지도 못하는 헌정사상 최대 ‘인사참사’의 주인공 신세는 면할 가능성이 커졌다.
그의 청문회는 가시밭길을 예고하고 있다. 청문회 ‘보이콧’ 등 강경 입장을 고수 중인 새정치민주연합은 이미 ‘불합격' 판정을 내리고 철저한 사전검증에 착수하고 있어서다. 문 후보자에게 ‘더 큰 불행’은 청문회 위원장에 ‘원샷 원킬의 저격수' 박지원 의원이 내정됐다는 사실이다.
유력인사의 신상 정보 수집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박 의원은 스스로를 '청문회 낙마 7관왕'이라 부른다. 이명박(MB) 정부에서 박근혜 정부까지 감사원장, 헌법재판관 포함 7명의 국무위원 후보자를 줄줄이 사퇴시킨 전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박 의원은 13일 전화통화에서 “청문위원장 요청을 받아놓은 상태지만 청문요구서가 오지 않아 청문회가 취소되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문 후보자는) 총리감이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감도 못 된다"고 전의를 불태웠다.
김대중(DJ)정부의 ‘권력2인자’였고, 민주당에서 비상대책위원장과 원내대표를 두루 거쳐 ‘원로급’인 박 의원이 청문위원장직을 수락한 것은 문 후보자와 쌓인 개인적 ‘구원(舊怨)’이 배경이 됐을 것으로 추측된다.
문 후보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병상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을 때인 2009년 8월4일자 칼럼 ‘마지막 남은 일’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비자금 조성과 재산 해외 도피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됐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가 이루어 놓은 업적에 버금갈 수 있는 깨끗한 마무리가 있어야겠다. 그가 늘 외쳤던 ‘정의가 강물같이 흐르는 나라’를 위해서 말이다”라고 마무리해 박 의원을 비롯해 김 전대통령 측근 전부와 갈등을 빚었다.
중앙일보는 나중에 반론보도를 실었지만 박 의원의 앙금은 풀리지 않았다. 박 의원은 “중앙일보는 반론을 실었지만, 정작 당사자는 그 일에 대해 아직까지 일언반구도 없다"고 비난했다.
문 후보자는 또 2009년 5월26일자 칼럼 ‘공인의 죽음’을 통해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언급하며 “죽음은 자연인과 공인의 성격으로 나누어 판단해야 한다. 자연인으로서 가슴 아프고 안타깝지만 공인으로서 그의 행동은 적절치 못했다”라며 비판했다. 특히 “그의 장례 절차나 사후 문제에도 반영돼야 했다”고 한 발언이 노 전 대통령의 장례를 국민장으로 치를 필요가 없다는 주장으로 해석돼 야당의 거센 반발을 샀다.
야당의 정통성을 계승했다고 평가하는 2명의 전직 대통령에 대한 이 같은 칼럼에 대해 “사경을 헤매고 있는 전직 대통령을 욕보이고, 다른 한 명은 부관참시했다"는 게 측근들의 격앙된 반응이다.
박 의원은 MB정부 때 국무위원 후보자를 줄줄이 낙마시키면서 그 진가를 톡톡히 드러냈었다.
2009년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가 첫 희생양이었다. 박 의원은 당시 천 후보자가 강남 신사동 아파트 매입 과정에서 15억5000만원을 건설업자 박 모씨에게 빌린 사실을 포착했다.이어 청문회에서 둘의 관계를 ‘스폰서 관계'로 집중 부각시켜 천 후보자를 궁지로 몰아세웠다.
뿐만 아니다. 박 의원은 천 후보자와 박씨의 동반 해외 골프여행과 천 후보자 부인과 박씨의 해외 명품 쇼핑 의혹을 들춰내 천 후보를 당혹케 했다.
박 의원은 이 같은 의혹을 사전 보도자료로 배포하지 않고, 청문회 현장에서 집중적으로 따졌다. 후보 측의 사전 대응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결국 천 후보자는 박 의원이 면세품점 등에서 뽑은 해외 골프 및 호화쇼핑자료 등 ‘디테일’하기 그지 없는 공격에 버티지 못하고 경질됐다.
2010년 원내대표였던 박 의원은 국무총리 후보로 지명된 김태호 의원에 대해 위장전입, 세금탈루, 부동산투기, 병역기피, 논문표절 등 온갖 의혹을 들춰냈다. 부인의 과거 관용차 이용일지까지 들이대는 ‘독한 공격’에 김 후보자도 결국 무릎을 꿇었다. 신재민 문화체육부장관 후보자와 이재훈 지식경제부 장관 후보자도 박 의원이 진두지휘한 청문회 벽을 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박 의원은 2011년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의 낙마 때도 맹활약했다. 그는 총리후보 지명 직후 “전관예우로 7개월 만에 7억원을 번 정 후보의 검증이 청와대에서 문제 없었다니…. 과거 청와대가 검찰총장, 국무총리, 지식경제부·문화관광부 장관이 문제 있었다고 발표했었느냐”고 비판했다. 정 후보에 대해 각종 의혹을 제기하던 박 의원은 “사퇴하지 않으면 매일 한 건씩 추가로 폭로하겠다”고 압박하자 결국 정 후보는 청문회에 서보지도 못하고 백기를 들었다.
김병하 대법관후보와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도 박 의원이 주도하는 야당의 의혹 제기로 중도 낙마했다.
청와대가 임명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면 박 의원과 문 후보자간 ‘창과 방패’의 전쟁이 시작된다. 하지만, 단언컨대 이 전쟁은 둘만의 싸움으로 끝나지 않는다. 야당 vs 인사권자인 박근혜 대통령, 야당 vs ‘기춘대원군’으로 불리는 김기춘 비서실장, 7.30재·보궐선거의 기선을 잡기 위한 야당 vs 여당간 전쟁이란 복잡한 모습을 띠고 있다.
새정치연합측은 문 후보자를 끈질기게 물고 늘어짐으로써 현 정부의 잇딴 인사참사를 부각시키고, 재보선의 승기를 거머쥐겠다는 계산이 다분히 깔려 있다. 이번 청문회의 진짜 타깃은 지난 1년여 동안 ‘공허'하게 퇴진을 요구해온 김 비서실장이란 얘기도 들린다.
만약 안 전 대법관에 이어 문 후보자까지 낙마한다면 그에 대해 책임을 질 사람은 딱 한 사람, 김 비서실장 뿐이기 때문이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