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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대학교의 불 꺼지지 않는 일요일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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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근호 IT과학부 기자) 중국 베이징 출장 첫날이었던 지난 8일, 밤 9시가 넘은 늦은 시간에 베이징대로 발길을 옮긴 것은 언젠가 TV에서 본 ‘불이 꺼지지 않는 베이징대’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이날은 일요일이었다. 괜히 가봤자 아무 것도 없는 게 아닐까 은근히 걱정하면서 스마트폰 지도에서 ‘페킹 유니버시티’를 검색해 발걸음을 뗐다. (Peking은 베이징을 뜻한다. 1958년 중국 정부가 새로운 알파벳 표기법을 발표하면서 베이징은 Peking에서 Beijing으로 바뀌게 됐다.)

베이징대로 들어가는 문은 뜻밖에도 경찰 한 명이 서서 지키고 있었다. 나중에 들으니 베이징대가 워낙 유명해 찾는 사람이 많아 출입을 제한한다고 했다. 학생들의 안전을 지켜주고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해서다. 경찰은 영어를 하지 못했지만 한국 여권을 보여주자 들여보내 주었다.

캠퍼스는 일요일 늦은 밤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학생들로 북적거렸다. 건물 앞마다 자전거가 수없이 열을 지어 주차돼 있었고, 한 현대식 건물에 들어가자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이 보였다. 도서관 열람실은 자리가 다 차 있는지, 비어 있는 강의실마다 학생들이 드문 드문 앉아 책이나 노트북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강의실 밖에 놓여 있는 테이블은 물론 나중에 보았지만 학교 근처 맥도날드와 커피숍에도 공부하는 학생들로 가득 차 있었다.

기숙사 쪽으로 발길을 돌리자 또다른 흥미로운 모습이 펼쳐졌다. 마치 하나의 마을처럼 찐빵집이며 과일가게며 세탁소, 목욕탕, 식당, 수퍼마켓 등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곳에서 학생들은 밤참을 사먹기도 했고, 한 손에 목욕탕 바구니를 든 남녀 학생들이 기숙사 쪽에서 우르르 몰려 나왔다.

베이징대는 중국의 실리콘밸리라 불리는 중관촌 바로 옆에 자리잡고 있다. 스마트폰 제조사인 샤오미, 중국의 트위터인 시나웨이보, 중국 1위 인터넷 포털인 바이두, 마이크로소프트 아시아연구소(MSRA) 등이 모두 여기에 있다. 상장 기업만 200곳이 넘는다.

현지에서 만난 한 연구원은 “이런 IT기업들에 베이징대 학생들이 많이 들어간다”며 “요즘 중국 대학교에서 입학 점수가 가장 높은 학과는 컴퓨터공학과”라고 했다. 반면 의과대학은 하위권이다. 컴퓨터공학은 노력 여하에 따라 큰 부를 이룰 수 있지만 중국에서 의사는 힘들게 공부해도 월급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대만 출신의 혼 시아오 웬 MSRA 소장은 “중국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세계적으로 약진하고, 중국 학생들의 소프트웨어 개발 능력이 일취월장하고 있는 이유는 단순하다”며 “그만큼 열심히 하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가난에서 벗어나 경제가 발전하는 시기에는 어느 나라나 사람들이 더 열심히 일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혼 소장의 얘기를 들으면서 겉에서 보기에 그리 쾌적해 보이진 않는 기숙사에서 잠을 자며, 밤 늦은 시간까지 공부하다 간식으로 찐빵을 사먹기 위해 길게 줄을 서있던 베이징대 학생들의 모습이 겹쳐 떠올랐다. (끝)

오늘의 신문 - 2024.05.18(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