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첼은 1946년에 설립된 자동차 관련 컨설팅 회사입니다. 주요 고객은 보험사 및 미국과 캐나다 전역에 퍼져 있는 자동차 수리점들입니다. 이들이 갖고 있는 데이터의 양은 굉장히 방대합니다. 수십년간 축적된 자동차 사고의 기록과 그와 연관돼 자동차 부품의 가격 정보가 미첼의 슈퍼컴퓨터 안에 들어 있습니다.
창업주인 글렌 미첼의 차고에서 출발한 미첼은 북미 최대 자동차 부품 가격 정보 제공업체로 성장했습니다. 현재 주인은 미국 최대 사모펀드(PEF) 운용사 중 하나로 꼽히는 KKR입니다.
글렌 미첼의 아이디어는 간단했습니다. 자동차 정비공이었던 그는 유난히 ‘목록(list)’을 좋아했다고 합니다. 사물과 현상을 일정한 기준 아래 분류하고, 이를 특정한 목적에 맞게 종합하면 정보 이상의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점을 깨달은 겁니다. 분류의 대상은 바로 자동차 부품이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경제가 급팽창하면서 자동차 산업이 발달하고, 그에 따라 사고도 빈번하게 일어났습니다. 자동차 수리점으로 물밀듯이 사고 차량이 들어오기 시작한 겁니다.
그러다 보니 고객과 자동차 수리점, 보험사 간에 분쟁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차주는 사고가 나면 이를 보험사가 지불해줄 것을 기대하기 마련인데 보험사들은 자동차 수리점의 터무니없는 부품 교환 비용에 성이 났던 겁니다. 그러던 차에 글렌 미첼이 제공한 방대한 부품 가격 목록이 하나의 기준점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 근거해 공임비를 산정하면 된다고 사회적인 합의가 이뤄진 겁니다.
어떻습니까? 마치 오늘날 우리의 모습과 상당히 닮아 있지 않나요? 요즘 국내 자동차 산업은 수입차 홍수 시대로 새로운 변화를 맞고 있습니다. 수입차 시장 점유율이 10%대를 넘었습니다. 젊은층들의 수입차 선호 현상을 감안하면 이 속도는 더 빨라질 수밖에 없을 겁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그랬듯이 요즘 국내 자동차 시장도 부품 가격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지나치게 비싼 수입차 부품 가격 때문에 소비자들이 해외에서 부품을 직접 구매하는 기현상까지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 당연한 의문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엔 왜 미첼과 같은 회사가 없는지 말입니다. 기업이건 정부건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가격 정보만 있다면 수입차 소유주와 보험사들이 바가지를 쓰는 일은 없을 겁니다. 다시 말해 국산차를 소유한 보험 가입자들이 수입차 소유주의 차 수리비를 지원해 주는 비정상적인 현상이 발생하진 않았을 거란 얘기입니다.
이와 관련해 최근에 변화의 조짐이 일고 있습니다. 메리츠화재가 미첼과 제휴해 시범 서비스센터를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 메리츠화재의 ‘실험’이 성공한다면 국내 수입 자동차 시장은 큰 변화를 맞게 될 겁니다.
문제는 수입차 딜러들의 반발입니다. 코오롱, 한성모터스, 고진모터스 등 수입차 딜러들 입장에선 부품 시장의 투명성이 반갑지만은 않다고 합니다. 오히려 주요 먹거리를 사라지게 만들어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요인이라고 합니다.
그동안 수입차 딜러들은 자동차 자체를 파는 것보다는 구입시 운반비, 부품 교체 등에서 많은 이익을 남겨 왔습니다. 예컨대 벤츠 한 대를 구입했다고 가정하면 인천항을 통해 들어온 ‘애마’를 집까지 배달하는데 드는 비용은 60만원입니다. 국산차가 12만원 수준이니까 거의 폭리 수준입니다.
물론 국내 차도 에쿠스와 마티즈의 운반 비용은 차이가 납니다. 그렇더라도 수입차는 물 건너 왔다는 이유로 훨씬 비싼 운반비를 차주가 지불해야 합니다. ‘미첼 시스템’이 국내 수입차 시장에서 자리를 잡게 되면 수입차 딜러들은 다른 방법으로 활로를 찾아야할 겁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