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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시가 신호등 때문에 옥신각신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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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라 국제부 기자) 독일 수도 베를린에는 독특한 신호등이 있습니다.

작은 키에 통통한 몸, 중절모를 쓴 남자가 그려진 신호등 ‘암펠만헨’ (Ampelmannchen)인데요. 신호등을 뜻하는 ‘암펠만’과 작다는 뜻의 파생어 ‘헨’이 붙은 이 신호등은 1960년대 동베를린에 처음 등장했습니다. 지금은 베를린 곳곳에서 암펠만헨을 캐릭터로 만든 인형과 의류, 액세서리, 암펠만헨 메뉴 등 기념품을 볼 수 있을 정도로 명물이 됐습니다.

‘암펠만헨’은 50세를 훌쩍 넘긴 나이 만큼이나 굴곡진 역사가 있습니다. 암펠만헨은 1961년 동독의 칼 페글라우 박사가 동베를린시로부터 의뢰 받아 남녀노소에 친근한 캐릭터로 만들어졌습니다. 시력이 떨어진 노인이나 집중력이 낮은 어린이들도 잘 볼 수 있게 불이 들어오는 부분을 최대화 했죠. 건너도 된다는 녹색은 게어(Geher·걷는 사람), 적색은 슈테어(Steher·서 있는 사람)입니다.

동독이 서독에 흡수통일되면서 암펠만헨은 거리에서 한때 완전히 사라진 적도 있습니다. 동독인들의 추억과 함께 사라졌던 암펠만헨은 1995년 조명 디자이너 마르쿠스 헬하우젠에 의해 조명으로 재탄생합니다. 이후 다양한 제품으로 살아나 구동독의 마스코트로 자리 잡았고, 세계적으로 사랑받았습니다.

2005년 베를린시는 암펠만헨을 횡단보도 신호등으로 다시 부활시킵니다. LED 신기술로 무장도 시켰습니다.

베를린에 ‘암펠만헨’이 부활한 지 10년. 이를 두고 또다시 논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 신호등이 성차별적이라는 주장 때문입니다. 일부 시의원들은 지난 12일 신호등 속에 여성 캐릭터를 넣자는 발의안을 베를린 시의회에 제출했습니다. 여성이 그려진 신호등은 ‘암펠프라우(Ampelfrau)’로 베를린 교통위원회가 여러 가지 도안을 검토 중입니다.

독일 사회민주당(SPD) 베를린 지부의 마르티나 마티스초크-예질치멘은 “베를린의 길거리에 더 많은 여성이 나타나야 한다”면서 “베를린은 암펠프라우가 등장할 수 있는 다양성의 도시”라고 했습니다. 반대 의견도 있습니다. 일부 의원들은 “암펠프라우는 당당하고 현대적인 모습이어야 한다”며 “긴 머리에 치마를 입을 필요는 없다”고 주장하고 있죠.

독일에서 암펠프라우는 이미 몇몇 도시에 등장했습니다. 드레스덴과 츠비카우 등 일부 도시에는 머리를 길게 땋고 치마를 입은 여성 캐릭터가 신호등에 나타나고 있죠. (끝)

오늘의 신문 - 2025.06.02(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