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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LINE: '밀회'의 김희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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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애 : 20년 만에 스크린 컴백, 오랜만에 도전한 예능, 그리고 드라마 ‘밀회’의 눈부신 성공으로 그녀는 또 한 번의 전성기를 기록하게 된다. 20대 트로이카로 군림하던 청춘스타였던 김희애는 남들의 눈에는 더 없이 찬란하게 빛나던 그 시절을 돌이키며 “행복한 것도 모르고 확 늙어버린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40대인 지금이 그때에 비해 훨씬 행복하다고 말한다.

배우로서의 자의식 역시도 지금이 더 또렷하다. 김희애는 ‘언제부터 배우를 직업으로 생각했냐’는 질문에, “20~30대에는 그냥 시키는 대로만 했다. 30대까지만 해도 확신이 서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70~80세까지 연기를 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고 말한다. 그녀에게 연기에 관한 질문을 던지면 눈을 빛낸다. 최근작 ‘밀회’에서 만난 안판석 PD와의 작업 소감을 물어보면, 그녀는 대학 시절의 열정이 떠오른다고 말한다. 2014년의 김희애가 아름다운 이유, 바로 여기에 있다.

안판석 : ‘아내의 자격’ 이후 ‘밀회’로 김희애와 두 번, 호흡을 맞췄던 연출가. 1994년 MBC 베스트극장 ‘사랑의 인사’로 데뷔, 히트작으로는 ‘장미와 콩나물’, ‘하얀거탑’, ‘아내의 자격’, ‘밀회’ 등이 있다. 최근작 중 ‘세계의 끝’의 경우, 작품성 면에서는 호평을 얻었으나, 대중성은 다소 떨어진다는 평가를 얻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드라마는 안판석이라는 명성에 걸맞은 예술적인 감각이 느껴진다. 김희애와 함께한 ‘아내의 자격’과 ‘밀회’는 모두 종합편성채널 JTBC에서 방영되었는데, 두 작품 모두 대단한 성과를 끌어내며 신생 채널의 이름을 알리는데 이바지했다. 이런 안판석 PD와의 호흡에 대해 김희애는 “결과를 떠나 과정 자체가 행복한 작업”이라고 말한다. 그는 “연기 면에서도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을 발견해주신다. 엄청난 신을 가볍게 부담스럽지 않게 실타래 풀듯 살살 풀어주셔서 의지가 된다”고 말했다. 또 시청률과 같은 결과를 떠나 힘들고 가난했지만 굉장히 재미있고 행복했던 대학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행복한 작업이었노라고 말했다.

‘밀회’는 스무살 청년과 마흔살 여자의 금기시된 사랑을 다룬 치정극으로 홍보됐고, 방영 중에도 곱지 않은 편견 가득한 시선을 받기도 했지만, 대다수 시청자들은 단순한 불륜극이 아닌 세속적 욕망으로 얼룩진 현대인의 삶 전반을 돌이키게 하는 인문학적 드라마라는 것에 동의한다. 김희애 역시 ‘밀회’에 크나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으니, 그에게 안판석이라는 연출가는 특별한 존재임이 틀림없다.

유아인 : 김희애와는 19세 나이차가 나는 후배 배우로, 두 작품에서 인연을 맺었다. 먼저 영화 ‘우아한 거짓말’에서는 이웃집 남자로 만나더니, 드라마 ‘밀회’에서는 스무 살 나이차를 극복하고 뜨거운 사랑을 펼쳐나간 연인 사이로 분했다. 김희애는 유아인에 대해 “상대역으로 너무 좋고 감사하고 행복하다. 숨소리 하나도 역할에 빠져 있으니까 내가 선배지만 어떨 때는 자극도 받는다”고 말했다.

실제 ‘밀회’에서 유아인이 이선재 역을 맡도록 가장 큰 공헌을 한 이가 김희애이기도 하다. 김희애가 제작사에 적극 추천했고, 유아인에게도 적극 러브콜을 보내 성사된 캐스팅이다. 실제로도 19세 나이차가 나는 두 사람이지만, ‘밀회’ 속 두 사람은 나이차를 가늠할 수 없는 케미스트리를 보여줬다는 평을 얻는 것에 성공한다. 특히 ‘밀회’ 2회 등장한 슈베르트의 ‘네 손을 위한 판타지’ 합주신은 대한민국 드라마사에 남을 명장면으로 완성되었다. 이들 두 배우가 선보인 스승과 제자와 연인 사이를 오간 열띤 연기는 앞으로도 수년간 회자될 명연기로 기록될 것이다.

현숙 : 김희애가 무려 21년 만에 복귀한 영화 ‘우아한 거짓말’에서 맡았던 역할. 이 영화 이전 그의 마지막 스크린 출연작은 1993년 영화 ’101번째 프로포즈’였고, 그는 문성근과 멜로 열연을 펼쳤다. 당시 문성근이 노총각으로 나왔을 정도이니, 흐른 세월의 무게를 짐작할 수 있다. 어쨌든, 굉장히 오랜만에 성사된 스크린 복귀에서 김희애는 신선한 충격을 선사한다. 화장품 광고 속 반짝이는 피부의 우아한 김희애가 마트에서 두부를 팔며 생계를 책임지는 평범한 주부로 분한 것이다. 우걱우걱 단무지를 먹는 모습은 낯설어서 더 좋았던 그녀의 변신이다.

무엇보다 ‘우아한 거짓말’의 대본이 좋아 결코 지나칠 수 없었다는 김희애는 언론시사회 당시 눈물을 터뜨리기도 했다. 고아성, 김유정, 김향기 등 아역배우들의 연기에 감동을 받았고 스스로의 연기는 가장 부족했었다고 말했다. 그녀의 연기 변신을 바라보는 시선은 다소 엇갈리긴 했지만, 그래도 김희애의 현숙이었기에 더욱 특별했다는 평가 역시 상당했다. 이한 감독은 극중 국수를 먹으며 우는 장면을 언급하며 “김희애의 생활연기에 감탄했던 순간이다”고 추켜세우기도 했다.

문성근 : 김희애와 로맨틱 코미디 영화 ’101번째 프로포즈’에 출연한 배우. 1993년 김희애와 문성근이 이 영화에 함께 출연한 계기가 흥미롭다. 당시 영화 제작사 신씨네는 PC통신망 하이텔과 제휴해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두 배우가 남녀연기자 인기 순위 2위에 등장한 것을 보고 적극 러브콜을 보냈고, 이에 남녀주인공으로 연을 맺게 됐다. 두 배우의 동반 캐스팅은 큰 화제가 되었다. ‘인기급상승 문성근 김희애 영화 통해 콤비’란 제목의 기사가 주요 일간지를 통해 보도될 정도였다.

당시 제작사는 김희애를 출연시키는 것이 그리 호락호락한 일은 아니었다며 캐스팅 자체가 101번째 프로포즈였다고 말했다. 영화와 유독 인연이 없었던 이유에 대해 당시 김희애는 “한국 영화에 대한 좋지 못한 선입견 때문에 85년 첫 영화 이후 영화출연을 피해왔다”고 밝혔다. 당시 보도를 보면, 무명시절 출연한 영화 ‘내 사랑 짱구’에서의 기억이 그리 좋지 않았던 것으로 짐작된다.

’101번째 프러포즈’ 이후에는 스크린에서도 활발히 활동할 것으로 기대됐던 김희애, 거짓말처럼 무려 20년 이상 스크린을 떠나 있었다. 하지만 2014년 영화 ‘우아한 거짓말’에 출연했고, 가수 조영남이 풍미했던 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 ‘쎄시봉’에도 출연을 결정한 만큼, 스크린 속 김희애를 자주 볼 날은 머잖은 것 같다.

전영록 : 김희애가 1987년 부른 ‘나를 잊지 말아요’의 작곡가이자 김희애와 함께 1990년대를 호령했던 청춘스타. 김희애와 전영록은 1990년 한국응용통계조사연구소 조사 결과, 10대들이 좋아하는 인기 연예인 10위권(김희애는 여자 탤런트 2위, 전영록은 남자가수 6위)에 나란히 이름을 올릴 정도의, 청춘 스타였다.

가수 활동과 관련, 김희애는 “가수 할 재능도 없고 기념 앨범을 한 번 낸 것 뿐”이라며 민망해 하지만, 스물셋 그녀가 부른 ‘나를 잊지 말아요’는 발표 당시 높은 인기를 구가했다. 당시에 배우가 기념 앨범을 내는 등 가수로 활동하는 것이 지금 배우들이 드라마 O.S.T에 참여하는 것처럼 흔했다고 해도, 김희애는 당대의 엔터테이너였음이 틀림없다. 그가 본업인 연기 외에 외도한 것은 가수 외에도 1986년부터 3년 동안 KBS ‘FM인기가요’의 DJ를 맡았고, MBC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 등 방송국 간판 예능 프로그램 MC도 맡았다. 다재다능한 엔터테이너였다.

이승기 : 김희애의 짐꾼. 2013년 예능 프로그램 ‘꽃보다 누나’에서 윤여정, 김자옥, 김희애, 이미연 등 네 여배우와 짐꾼이라는 이름의 도우미 이승기가 유럽으로 여행을 떠난다. 이 과정에서 이승기를 대하는 김희애의 태도가 시청자들을 감동시켰다. 김희애는 두 아들을 키운 어머니다운 현명함과 여유로 허둥지둥 대는 이승기가 스스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유도했다.

그 과정이 나영석 PD의 편집을 통해 강조돼, 김희애는 ‘배려의 아이콘’으로 부상한다. 보다 적극적으로 이승기를 지휘하는 이미연의 캐릭터와 뒤에서 은은하게 가이드해주는 김희애 캐릭터는 방영 당시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이외에도 김희애는 ‘잡식소녀’라는 캐릭터까지 얻게 되는데, 오랜만에 예능 출연 이후, “충격적이었다. 나쁘다 좋다가 아니라 ‘이 사람들이 나를 가지고 노나’ 하는 문화적 충격이 있었다”며 자신의 캐릭터화에 대한 걱정과 우려가 있었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시간이 더 지나고 나니, “제작진이 '천재' 소리를 듣는 이유를 알게 됐다”고 말하며, ‘꽃누나’가 느닷없는 터닝포인트가 되었다고 말했다. 꽤 오랜만에 예능에 도전해 리얼 버라이어티, 관찰 예능에 충격을 받았다고 고백한 그녀는 사실 1990년대 예능계가 탐내는 예능샛별이었다. 1990년대 그녀를 기억하는 한 지상파 예능 PD는 “김희애야말로 원조 예능 스타다. 타고난 감각이 있다”라고 추억했다.

최진실 : 1990년대를 호령했으나 자살로 생을 마감한 비운의 스타. 1990년대 최진실, 김희애, 채시라는 트로이카로 활약했다. 또 김희애와 최진실은 1989년 드라마 ‘당신의 축배’와 1993년 ‘폭풍의 계절’ 등에서 함께 호흡을 맞춘 인연도 있다. 훗날 김희애는 “최진실이라는 배우의 인기는 범접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그녀를 추억했다. 김희애가 1983년 데뷔, 최진실이 1988년 데뷔했으니, 김희애가 더 선배였으나 김희애의 말대로 최진실은 가파르게 성장해 톱스타 반열에 올랐다.

특히 광고 모델로 큰 인기를 구가하기 시작한 최진실은 데뷔 무렵, 김희애가 메인 모델이었던 한국화장품 신제품 CF에 보조 출연자로 섭외되었는데, 촬영 과정에서 김희애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의 존재감을 드러내면서 메인 모델로 격상되었던 에피소드도 있다. 두 사람이 함께 활동하던 시절, 이들 주변 인물들간 몇 차례 미묘한 신경전이 감지된 적도 있었으나 지금은 모두 옛 추억이 되어 버렸다.

이찬진 : 김희애의 남편이자 소프트웨어 개발자이자 벤처 사업가. 1996년 이찬진 만 31세, 김희애 만 29세 때 두 사람은 결혼한다. 당시 '한국의 빌 게이츠'와 미모의 탤런트의 결혼은 큰 화제가 됐다. 결혼 기자회견 당시, 김희애는 “결혼 이후에도 평생 연기를 할 것”이라고 말했고, 이찬진도 “적극 후원하겠다”라고 했다. 하지만 결혼 이후, 3년 3개월의 비교적 긴 공백기를 가지며 가정에 집중했을 만큼 당시 김희애에게 신혼 및 육아는 연기만큼이나 중요한 것이었다.

당시를 돌이키며 김희애는 “주인공만 하다 내려놓아야 하는 나이였는데, 그러기 쉽지 않았던 그 시절, 결혼생활이라는 것이 물론 매 순간 행복하지만은 않고 힘든 부분이 훨씬 많았음에도 심리적으로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그렇게 내려놓은 김희애는 결혼 이후 복귀한 다음부터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연기자로서의 삶을 이어왔고, 다소 파격적인 역할에도 주저함이 없었다.

그는 결혼 이후 복귀를 알렸던 1999년 “남편의 반대는 없었냐”는 질문에, “남편은 남편대로, 나는 나대로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2014년에도 여전히 “결혼한 지 15년이나 지났지만 난 아직도 우리 남편을 잘 모른다. 어쩌면 내가 남편을 제일 모를지도 모른다. 서로 모르는 척 해주는 게 좋은 것 같다”라고 말한다.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는 것이 배려라는 것을 아는 현명함은 아주 오래 전부터 이들 부부 사이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어주는 접착제 역할을 한 것 같다.

후남 : 김희애가 1992년 방영된 드라마 ‘아들과 딸’에서 맡았던 역할. ‘아들과 딸’은 61.1%의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던 국민 드라마였다. 남아선호사상이 뿌리박힌 가정에서 딸이 겪는 좌절, 고통 그리고 성공을 다룬 이 드라마는 온전히 후남의 드라마였다. 후남이 대학에 진학하는 것으로 스토리가 수정된 것은 시청자들의 격렬한 항의 전화 때문이었다고. 당시만 하더라도 사회의 병폐였던 남아선호사상을 지적한 이 드라마와 후남이라는 캐릭터는 큰 공감을 얻었다. 명실상부, 김희애의 대표작 중 하나다. 지금의 김희애는 우아함의 대명사이지만.

김수현 : 한국 방송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 김희애와는 2003년 드라마 ‘완전한 사랑’으로 첫 인연을 맺었다. 김희애는 “20대부터 (김수현 작품을) 하고 싶었지만 안 불러주시더라”라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식사자리에서 우연히 만난 김 작가로부터 “희애 씨는 차돌에 참기름 발라놓은 것 같아”라는 칭찬인지 아닌지 아리송한 평을 들었다. 이후 자신을 불러주지 않자 ‘나를 싫어하시나 보다’라고 생각했다. 또 김수현 작가의 영화 ‘에미’ 오디션에도 참여했다가 떨어진 적도 있다.

포기하며 살던 중 37세 김희애에게 연락이 온다. 드라마 ‘완전한 사랑’ 속 시한부 삶을 사는 여인 영애 역 제안이 들어온 것이다. 뛸 듯이 기뻐하며 4줄짜리 시놉시스를 읽고 또 읽는 그를 의아한 듯 바라보던 남편에게 김희애는 “이건 스티브 잡스에게서 같이 일하자는 제안이 온 것 과 같아”라는 비유로 공감을 얻어냈다고.

그렇게 김수현과 인연을 맺은 김희애, 2004년 ‘부모님 전상서’에서는 발달장애 아들을 키우는 어머니의 강인함을, 2007년 ‘내 남자의 여자’에서는 불륜녀 화영의 카리스마를 표현해내 호평 받았다. 작품 선택에 있어 무엇보다 ‘대본’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시청률은 미미해도 자신 있고 자랑스러운 작품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김희애에게 김수현 작가와의 작업이 여전히 들뜨고 행복한 것은 당연하다.

화장품 브랜드 S : 김희애가 10년 넘게 모델로 활약 중인 화장품 브랜드. 2004년부터 올해까지 꼬박 10년. 최장수 모델이다. 이 화장품 브랜드 속 대사 ‘놓치지 않을 거예요’는 개그맨 김영철에 의해 패러디가 되면서 유행어로 등극했다. 덕분에 CF 속 김희애의 우아한 이미지는 대중의 뇌리에 뚜렷하게 각인이 되어 있다. 그것이 배우의 행보에 있어 장점이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김희애는 이 CF를 계기로 3040 여성들의 워너비에도 등극한다.

20대에는 선크림도 바르지 않을 정도로 뷰티나 패션에 무지했다고 고백했던 김희애는 지금은 꾸준한 자기관리를 하고 있고, 여성들은 그녀의 비법을 조금이라도 알기 위해 귀를 쫑긋 세운다. 김희애의 비법?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팩을 하고, 매일 짧게라도 운동을 하는 것이다! 젊은 시절에는 예쁘게 보이는 것에 치중하느라 자꾸만 거울을 보는 배우들이 이해할 수 없었고 배우의 얼굴에 자연스러운 주름이 생기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노력한 만큼 가꿔지는 재미를 알아가는 그녀. 어린 그녀의 패기도 아름답고, 가꾸고 노력하는 그녀도 아름답다. (끝)

오늘의 신문 - 2024.05.08(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