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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전 업'이 아쉬운 창작 뮤지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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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태형 문화스포츠부 기자) 창작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 계셔’는 지난해 1월 서울 충무아트홀 소극장에서 초연돼 관객과 평단으로부터 두루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저도 초연 때 무척 재미있고 즐겁게 감상했습니다.

극은 6·25전쟁 때 포로 이송 과정에서 무인도에 갇히게 된 북한군과 국군 여섯 명이 살아남기 위해 만들어낸 가상 인물인 ‘여신님’을 통해 위로받고 전쟁의 상처를 극복하며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을 환타지와 유머를 곁들여 감동적으로 그려냅니다. 당시 비슷한 시기에 공연됐던 ‘날아라 박씨’와 이 작품을 묶어 ‘독특한 소재와 참신한 구성으로 한국 창작 뮤지컬의 미래와 희망을 보여주는 수작들’로 소개했었습니다.

지난해 5월 역시 소극장인 대학로 아트원씨어터에서 재연된 이 작품이 올해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다시 공연된다는 얘기를 듣고는 ‘기대 반, 우려 반’이었습니다. 연강홀은 600여석 중극장입니다. 연극·뮤지컬계에서는 보통 객석수 300석 미만을 소극장, 500~800석 정도를 중극장, 1000석 이상을 대극장으로 구분합니다. 또 소극장에서 공연된 작품이 중극장으로, 중극장에서 공연된 작품이 대극장으로 공연장 규모를 키워 다시 제작되는 것을 ‘버전 업’이라고 부릅니다.

극장과 무대가 커지면 작품의 세트와 인원, 무대 구성, 음향과 공간 설계 등도 이에 맞게 바뀌어야 합니다. 공연장에 맞는 재창작 작업이 필요하고 여기에 드는 제작비 상승도 만만치 않습니다. ‘버전 업’이 쉽지 않은 이유입니다. 지난해 중극장에서 ‘버전 업’해 올려졌던 창작 뮤지컬 ‘인당수 사랑가’와 ‘날아라 박씨’는 실패했습니다. 완성도에서 좋지 않은 평가를 받았고 흥행에서도 초라한 성적표를 남겼습니다. 창작 뮤지컬에서 제가 봤던 ‘버전 업’ 성공 사례는 중극장에서 대극장으로 나아간 ‘서편제’가 유일합니다.

제가 본 ‘여신님이 보고 계셔’는 연극적 요소가 강한 뮤지컬로 소극장에 적합한 작품이었습니다. ‘중극장용으로 어떻게 진화했을까.’ 버전 업의 또다른 성공 사례를 기대하며 일찌감치 공연장을 찾았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공연은 조금도 진화하지 않았습니다. 소극장 공연을 중극장에 그대로 얹어놓았다고 할까요. 무대가 소극장 규모에 맞게 축소됐습니다. 작품 내용과 무대 구성, 동선 등은 초연과 달라진 게 거의 없었습니다. 오히려 개악된 점이 두드러졌습니다. 무엇보다 라이브 연주가 녹음 반주(MR)로 바뀌어 초연 때 보여준 생동감과 활기가 크게 줄어들었습니다.공연 초반이라 그런지 배우들의 연기과 호흡, 반주와 가창의 조화, 음향 상태 등이 전반적으로 불안했습니다.

작품과 공연장의 ‘궁합’이 맞지 않았습니다. 소극장에서 보여준 작품의 밀도가 공연장이 커진 만큼 옅어진 느낌이었습니다. 제작과 연출 입장에선 소극장에서 흥행으로 검증받은 작품을 건드리지 않고 그대로 가져가는 게 어찌 보면 안전한 시도일 수 있습니다. 남자 배우 캐스팅에 신경 쓰고, 어느 정도 작품의 수준만 유지해서 지난해 초연·재연 때 보여준 흥행력에 묻어가려는 속내도 읽힙니다. 하지만 더이상 발전의 여지는 보이지 않습니다. 섣부른 재단일 수도 있지만 이 작품은 다시 대학로에 돌아가 소극장 공연으로 만족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영미권에서는 소극장에서 출발한 작품이 계속 ‘버전 업’에 성공해 대극장 흥행작으로 발전하는 사례가 적지 않습니다. 오프 브로드웨이에서 시작해 ‘위키드’를 누르고 토니상을 휩쓸었던 뮤지컬 ‘애비뉴 Q’가 대표적입니다. 지난해 국내에서 공연돼 큰 호응을 받았던 작품입니다. 국내에서도 대학로 소극장에서 시작해 블루스퀘어나 샤롯데씨어터 등 내로라는 대극장까지 진출해 성공을 거두는 ‘버전 업’ 신화가 탄생하기를 기대해 봅니다. (끝)

오늘의 신문 - 2024.05.17(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