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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청에서 벌어지는 피의자와 기자의 숨박꼭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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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람 지식사회부 기자) “이러지 말아 주세요. 쓰러질 것 같아요…”

세월호 실소유주인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일가 계열사 다판다의 송국빈 대표가 지난 30일 인천지검에서 조사를 받고 나서면서 기자들에게 던진 말입니다. 자정이 다 돼 조사를 끝내고 나온 그는 취재진을 피해 도망가려다가 쫓아가던 기자들에게 붙잡히자 이렇게 말한 것이죠. 그는 얼굴을 반쯤 가린 채 “돌아가신 우리 희생자들, 유족들에게 정말 죄송하다”는 말을 남기고서야 귀가할 수 있었습니다.

검찰 조사를 받는 피의자들은 수사를 하는 검사 뿐만 아니라 기자들과도 팽팽한 줄다리기를 합니다. 기자는 중요 피의자에 대한 기사를 쓰기 위해 조사 전이나 후에 만나 사진을 찍고 본인 입장을 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소환 조사 예정·종료 시각이면 기자들은 검찰청사 출입구에 노란 테이프로 ‘포토 라인’을 만들어 놓고 기다리곤 합니다. 거물급 인사들의 경우 대부분 미리 출석예정시간을 알린 뒤 이 라인에 서서 자신의 입장을 취재진에게 밝히곤 합니다.

하지만 전국민에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만큼 이를 피하고 싶어하는 사람도 많겠죠. 그래서 송 대표처럼 취재진을 따돌리려고 여러 가지 노력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송 대표는 이날 오전 10시 소환 통보 시각에도 많은 기자들이 청사 중앙 출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청사 옆쪽 민원실을 통해 몰래 입장했지요. 또 같은 날 조사를 받은 이강해 전 아해 대표도 나오면서 인터뷰에 응하기는 했지만 오전에는 역시 민원실을 통해 입장해 취재진을 따돌릴 수 있었죠.

지하주차장에 차를 대고 곧바로 엘리베이터 타고 조사실로 올라가는 것도 고전 수법입니다. 지난해 건설업자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조사를 받았던 원세훈 전 국정원장도 검찰 측에 “검찰청사 지하주차장 등 쪽문으로 출석할 수 있도록 협조해 달라”고 요청했었지요. 그러나 검찰이 “특별한 편의 제공은 없다. 알아서 들어오라”며 거절하는 바람에 결국 기자들 앞에 서는 수모(?)를 겪었습니다.

반면 기자들도 포토 타임 기회를 어쩔 수 없이 놓치기도 합니다. 이미 피의자가 체포돼 조사를 받고 있는 경우인데요. 최근 해운업체들이 보험금 규모를 부풀려 신청하는 것을 묵인하는 대가로 리베이트를 받은 혐의로 사후 구속영장이 청구된 고모 해운조합 본부장의 경우 기자들이 검찰 측에 “영장 발부시 포토 타임을 갖게 해달라”고 요청했으나 검찰이 “어렵다”고 알려왔습니다. 이미 체포영장이 발부돼 구치소에 들어 가 있어서 “사진을 찍기 위해 빼올 수는 없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피의자들에 잇딴 ‘몰래 입장’에 당한 인천지검 출입 기자들은 요즘 교훈을 얻고 여러 출입구로 분산해 나가 있습니다. 검사 만큼이나 현장 기자들도 피의자들과 치열한 기싸움을 하고 있는 셈이지요. (끝)

오늘의 신문 - 2024.05.18(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