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바로가기

뉴스인사이드

취재 뒷 얘기

러시아의 '마스키로프카' 전술

글자작게 글자크게 인쇄 목록으로

(이정선 국제부 기자) 우크라이나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국제정세를 긴장시키고 있습니다. 크림반도를 러시아가 합병한데 이어,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에서도 친 러시아 시위대들이 정부 청사를 장악하면서 분리 독립 내지 러시아와의 합병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지요.

한마디로 미국과 유럽연합(EU)을 중심으로 한 서방세계와 옛 소비에트연방의 영화를 재현하려는 러시아 간의 힘겨루기 양상이 중간에 낀 우크라이나를 통해 나타나고 있는 셈입니다. 신 냉전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까닭입니다.

그런데 도네츠크, 슬로뱐스키 등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활동중인 친 러시아 시위대를 보면 마스크를 쓴 무장병력이 심심찮게 외신에 노출됩니다. 사실상 블라디미르 푸틴의 지시를 받는 러시아 특수부대 소속의 병력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입니다.

이 복면 부대는 러시아 군 특유의 기만술인 ‘마스키로프카(Maskirovka)’의 특징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러시아어인 마스키로프카는 영어의 마스크(Mask·복면)와 같은 어원으로 ‘위장술’이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타임(TIME)은 지난 17일 마스키로프카를 위장, 은폐, 속임수, 허위정보 등을 포함하는 군사적인 전술을 의미한다고 보도했습니다.

러시아군의 특징 가운데 하나로 인식되는 마스키로프카의 전통은 600여 년 전부터 시작됐다고 합니다. 1380년 모스크바 남쪽으로 120마일 떨어진 쿨리코보(Kulikovo) 전투가 그 시초라고 하는데요, 러시아는 이때 몽골이 세운 킵차크한국과 맞붙으면서 기마 병력을 둘로 나눕니다. 한쪽 병력이 몽골의 ‘황금군단(Golden Horde)’을 맞아 평지에서 싸움이 벌였다가 인근 숲에 숨겨놓은 나머지 병력이 기습적으로 뛰어나와 승리를 거두었다고 합니다.

이 전투에서 승리함으로써 러시아는 몽골의 지배에서 벗어났다고 하죠. 이 킵차크한국의 일부 후예들이 현재 크림반도에 남아 있는 타타르인들입니다.

마스키로프카의 전통은 2차 대전 독일과 소비에트의 전쟁에도 등장합니다. 소비에트는 전쟁 전 독일로부터 100㎜짜리 대포를 구입했었습니다. 이후 독일 1941년 소비에트를 침공했을 때 소비에트의 전력을 100㎜ 대포로 가정하고 전술을 짰으나, 소비에트 군대가 130㎜로 구성돼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놀랐다고 합니다. 타임지는 “소비에트가 고전적인 마스키로프카 식 행동에 따라 독일로부터 사들였던 대포를 폐기처분하고 독자적인 대포를 생산했다”고 전했습니다.

소비에트연방은 또 2차 대전 당시 천막 아래에서 군함을 제조하거나, 자동차 공장에서 탱크를 만들고, 가짜 다리를 건설해 유인하는 방식 등을 즐겼다고 합니다.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도 이 같은 마스키로프카 전술을 의식, 1983년 10월 국가안보 결정지침 108에 “소비에트 연방은 군사작전의 일환으로 위장, 은닉, 속임수를 사용하는 마스키로프카 독트린을 개발해왔다”고 기술했다고 합니다.

동부 우크라이나에 포진해 있는 복면의 병사들도 자신들은 코사크 부족인들이라고 주장하지만, 우크라이나와 서방에서는 러시아 특수부대라고 보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동부에 4만여 병력을 집결해 놓고 반복적으로 의례적인 군사훈련이라고 주장하는 푸틴의 대응도 마스키로프카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러시아의 기만술이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마스키로프카에 대해 서방은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지 앞으로도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가 될 것 같습니다. / sunee@hankyung.com

오늘의 신문 - 2024.05.18(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