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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산업 역동성 제고?...이럴 거면 공청회는 왜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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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란 증권부 기자) 국회나 정부가 중요한 정책과 법률을 제정 또는 개정할 때 ‘공청회(public hearing)’라는 절차를 거칩니다. 각계각층의 의견을 듣고 이를 결정에 반영하자는 게 그 취지입니다.

그러나 공청회에서 나온 의견들이 실제 반영돼 이미 발표된 정부 정책이 수정되는 일은 찾기 쉽지 않습니다. 대부분 공청회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이 불만을 토로하면 정부 담당자가 나와서 어르고 달래거나 “추후 검토해보겠다”는 식으로 끝나는 게 보통입니다.

22일 열린 ‘증권산업의 역동성 제고를 위한 NCR제도 개선방안’ 공청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날 공청회는 금융위원회가 지난 8일 금융투자업계 재무건전성 지표인 NCR의 새로운 산출 방식을 발표한 뒤 가진 자리였습니다. 영업용순자본을 총 위험액으로 나누던 방식에서 영업용순자본에서 총 위험액을 뺀 값을 업무 단위별 필요유지 자기자본(라이선스 유지에 필요한 법정 비용)으로 나누는 방식으로 바꾼 게 그 내용입니다.

새 산출방식은 대형 증권사들이 주식투자, 인수금융 영업, 대출 등 IB 업무를 적극적으로 할 수 있도록 부담을 덜어준 반면 위험투자 없이 각종 상품의 중개·위탁매매 영업을 해온 중소형 증권사의 부담은 커졌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예상대로 이날 공청회에서는 중소형 증권사 관계자들의 성토 자리가 됐습니다. 문상원 한화투자증권 상무는 “자본금 규모 위주로 NCR 체계를 개편하다 보니 총 위험지표는 상대적으로 과소평가돼 대형사들에 비해 중소형사가 심각한 불이익을 받게 된다”고 비판했습니다.

김준송 한국스탠다드차타드증권 대표는 “중소형사들이 바뀐 NCR을 위해 영업 라이선스를 반납하면 된다고 하는데 이는 탁상공론”이라며 “채권중개 업무만 해도 6개 이상의 라이선스가 필요하다”고 꼬집었습니다.

이명순 금융위 자본시장과장은 “이번 NCR 개편안으로 대형사의 NCR이 올라가는 것은 알고 있지만 위험투자라는 IB 본연의 업무에 나서라는 정책적 의지가 담긴 것”이라며 다른 의견들에 대해선 “추가 검토하겠다”고 답했습니다.

공청회 말미에는 청중석에 있던 한 중형 증권사 리스크관리팀장이 “증권사별로 NCR 제도 개편 의견서를 금융투자협회에 제출했고 오늘 공청회에서 이에 대한 피드백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잘못된 생각이었다”며 불만을 터트렸습니다.

이에 이종환 금융감독원 건전경영팀장이 “의견서를 일체 받아본 적이 없다”고 답하자 일부 청중들이 실소를 터뜨리기까지 했습니다.

소통의 장이 돼야 할 공청회에서 당국과 업계간 불통의 모습이 부각된 점에 상당수 참석자들은 답답함을 느꼈을 것입니다. 공청회를 직접 민주주의 절차의 요식행위로 끝낼 게 아니라면 금융당국은 업계 의견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반영할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진정성있게 설명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입니다. (끝)

오늘의 신문 - 2024.05.03(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