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바로가기

뉴스인사이드

취재 뒷 얘기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들이 한숨 내쉬는 이유

글자작게 글자크게 인쇄 목록으로

(박동휘 증권부 기자) 요즘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들은 모였다 하면 한숨부터 쉰다고 합니다. 고려대 연세대 서강대 등과 비교해 절반에 불과한 학과 정원 때문입니다. 이대로라면 머지 않은 미래에 국내 1위를 경쟁 대학에 내줄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오는 모양입니다.

지난해 서울대 경영학과 정원은 135명이었습니다. 연세대와 고려대 정원이 300명을 웃돈다는 점을 감안하면 절반도 안되는 셈입니다. 원래 서울대도 비슷한 수준의 학생들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정운찬 총장 시절에 대학원 정원을 늘리면서 학과 정원이 줄었다고 합니다.

서울대 교수들이 경영학과 정원 축소에 민감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조직 규모가 축소되고 있다는 위기감 때문만은 아니라고 합니다. 경영학과의 정원은 대학 전체의 경쟁력을 좌지우지할 중요한 변수라고 합니다. 핵심 키워드는 바로 ‘기부금’입니다.

대학이 운영되는 재원은 크게 두 가지에서 나옵니다. 학생들이 내는 등록금과 졸업생들이 내는 기부금이 재원의 70% 이상을 차지합니다. 저출산 시대에 해마다 대학생 정원이 줄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졸업생들이 내는 돈은 대학 재정을 튼튼히 하는데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누가 대학에 기부금을 낼까요?

‘십시일반형’ 기부도 있겠습니다만 ‘큰손’은 역시 기업인입니다. 창업으로 성공을 거둔 분들이나 재계 오너들, 수십억 연봉을 받는 기업인들은 자신의 모교에 해마다 억 단위 기부금을 내곤 합니다. 경영학과 정원이 많을수록, 다시 말해 미래의 성공한 기업인들을 많이 확보해 놓을수록 대학 입장에선 광활한 기부금 풀(pool)을 확보하는 셈입니다.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들이 우려하는 바는 바로 이 점입니다.

어떤 분야는 안 그렇겠습니까만, 대학의 경쟁력도 결국 ‘돈’에 좌우됩니다. 많은 연봉을 제공해 좋은 교수들을 여럿 확보하고, 연구 시설을 최신식으로 지을수록 재능 있는 학생들이 오기 마련입니다.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 스탠퍼드 등 미국에서 대학 순위 상단에 올라가는 곳들도 대부분 막강한 금권(金權)을 자랑합니다. 대학 재단의 규모와 대학 순위가 비례한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입니다.

국내만 봐도 고려대 연세대 성균관대 등 재단이 튼튼한 곳들의 경쟁력이 매년 향상되고 있습니다. 일각에선 서울대가 지역균형 선발을 하면서 재력 있는 집에서 자란 소위 ‘강남 자제’들이 연세대 고려대로 몰리고 있는 것도 장기적으로 서울대의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한때 서울대가 창조경제학과를 신설하려는 계획을 검토했다고 합니다. 쪼그라든 경영학과의 정원을 원상태로 돌리기 위한 ‘꼼수’라는 비판 탓에 주춤한 상태이긴 합니다만 서울대의 절박함을 방증하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donghuip@hankyung.com

오늘의 신문 - 2024.05.04(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