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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뒷 얘기

재닛 옐런이 말하는 Fed의 시장 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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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유창재 특파원) 평상시 관광객으로 붐비는 뉴욕 타임스퀘어 메리어트호텔을 16일(현지시간) 양복 차림의 뉴요커들이 가득 채운 건 ‘세계 경제 대통령’을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재닛 옐런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 뉴욕경제클럽 초청으로 이곳에서 연설을 했습니다.

세계 금융시장을 움직이는 ‘파워 우먼’을 직접 볼 수 있다는 생각에 기자도 호텔을 찾았습니다. Fed는 워싱턴에 있어서 뉴욕 특파원은 Fed 의장을 만날 기회가 거의 없기 때문이죠. 불행하게도 이날 좌석이 완전히 매진돼 기자들을 위해 따로 마련된 방에서 화면을 통해 지켜봐야 했지만, 그래도 옐런 의장과 같은 공간에 있다는 사실 자체로 마음이 설레더군요.

사실 이날 연설에 새로운 내용은 없었습니다. 고용 시장의 슬랙(slack·완전고용 상태와 현재 고용시장 상황 간의 차이)이 여전하고, 인플레이션율은 우려스러울 정도로 낮기 때문에 상당 기간 제로(0~0.25%) 기준금리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였습니다. 그래서 시장에 미치는 영향도 적었지만 저는 오늘 연설이야말로 시장 참가자들이 제대로 이해해야 할 내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Fed와 시장 간의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옐런 의장의 생각을 자세히 밝혔기 때문입니다.

우선 배경 설명부터 드려야겠습니다.

옐런 의장의 전임자인 벤 버냉키 전 의장이 3차 양적완화 출구전략을 처음 언급한 건 작년 5월이었습니다. 의회 청문회에서였죠. 연내에 테이퍼링(tapering·채권 매입 규모를 점차적으로 줄여나가는 것)을 시작할 수 있다고 밝히자 주가는 급락하고 채권 금리는 급등했습니다. “어디까지나 경제 지표에 따라 정책이 결정될 것”이라며 진화에 나섰지만 시장은 ‘9월 테이퍼링설’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였습니다.

9월이라는 시점이 어떻게 나온 건지는 아무도 모른 채 말이죠. 하지만 막상 9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Fed는 테이퍼링을 발표하지 않았고 시장은 다시 한번 충격을 받았습니다. (Fed는 결국 12월에 올 1월부터 테이퍼링을 시작할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지난달에도 비슷한 상황이 재현됐습니다. 옐런 의장이 처음으로 가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기자회견에서 언급한 ‘6개월’이라는 표현이 문제가 됐죠. 양적완화 종료 후에도 상당 기간(considerable time) 제로금리를 유지할 것이라는 FOMC 발표문에 대해 한 기자가 ‘상당 기간이 정확히 어느 정도를 의미하느냐’고 묻자 옐런 의장은 “아마도 6개월이나 뭐 그 정도(probably means something on the orders of around six months or that type of thing)”라고 애매하게 답했습니다.

기자의 질문에 최대한 성실히 답하는 과정에서 실수를 한 것인지, 의도된 발언인 지는 사실 확실치 않습니다. 다만 한 시간 넘게 진행된 기자회견을 통해 경제 상황과 통화 정책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지만 시장은 ‘6개월’이라는 표현에만 꽂혔다는 게 문제입니다. 양적완화 종료 예상 시점은 오는 가을. 그러니까 내년 봄에는 기준금리가 올라갈 수 있다는 우려가 들불처럼 번졌습니다. 같은달 31일 시카고 연설에서 옐런 의장이 직접 진화에 나서기 전까지 시장은 또 한바탕 홍역을 치러야 했습니다.

오늘 뉴욕 연설은 시카고 연설 이후 보름여만에 가진 첫 연설입니다. 옐런 의장은 이 연설을 통해 무엇을 강조하고 싶었을까요?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경제는 불확실하며 통화정책은 경제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으니 제발 한두 가지 단편적인 사실만 보고 정책을 전망하지 말아달라’는 말이었습니다.

이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옐런 의장은 세 가지 질문이 FOMC에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첫째는 ‘여전히 노동 시장에 슬랙이 있는가,’ 둘째는 ‘인플레이션율이 (Fed의 목표치인) 2%에 근접해가고 있는가,’ 그리고 가장 중요한 세번째 질문이 ‘어떤 요소들이 경제 회복을 궤도에서 벗어나게 하는가’였습니다.

첫번째와 두번째 질문에 대해선 그동안 옐런 의장이 여러번 설명을 했고 각종 언론 매체도 상세히 보도를 해왔으니 오늘은 세번째 질문에 대한 그의 설명을 전해드리겠습니다. 다음은 옐런 의장의 발언 일부를 번역한 내용입니다.

"4년 전인 2010년 4월 경제 전망은 상당히 밝았다. 금융위기 상황에서 Fed가 실시했던 긴급 대출 프로그램은 끝나가고 있었고 1차 양적완화도 종료되기 직전이었다. 민간 경제예측 전문가들은 2011년 4분기가 되면 실업률이 8.6%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이 전망은 매우 정확했다. 실제 2011년 4분기 평균 실업률은 8.6%였다. 하지만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이 전문가들은 2010년 4월 FOMC가 2011년 2분기까지 기준금리를 1.3%로 올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FOMC는 (제로금리를 현재까지 유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2010년 11월 6000억 달러 규모의 2차 양적완화를 새로 시작했다. 오히려 더 완화적인 정책을 내놓은 것이다. 이런 잘못된 전망은 2011년에도 똑같이 반복됐다. 민간 전문가들은 2012년 4분기 실업률이 7.9%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측했는데 이 전망은 적중했다. 하지만 기준금리가 1% 올라갈 것이라는 전망도 내놨고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2011년 8월 FOMC는 ‘포워드가이던스’라는 새 정책을 시작했다."

옐런 의장은 “이 두 가지 사건이 통화 정책 결정은 살아 숨쉰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고 했습니다. 실업률 같은 단편적인 수치가 아닌 경제의 여러가지 요소를 종합적으로 관찰한 후 정책을 결정한다는 얘기입니다. 미국 상황 뿐 아니라 해외의 여러 돌발 변수들도 모두 정책에 영향을 미친다고 그는 말했습니다.

여기까지 읽으신 분들은 아마 뭔가 찜찜한 뒷맛이 남으실 겁니다. ‘그렇다면 정책을 어떻게 예측해야 하느냐’는 질문 때문입니다. Fed의 통화정책이라는 게 시장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데 경제 상황이 바뀔 때마다 정책이 바뀐다면 시장 참가자들은 답답함을 호소할 수 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사실 ‘테일러준칙(Taylor Rule)’이라는 것도 그래서 만들어진 도구입니다. 스탠포드대의 존 테일러 교수가 고안한 것인데 그 당시의 경제성장률과 인플레이션율 등에 따라 적정 기준금리를 산출할 수 있도록 만든 방정식이죠. 금융위기가 발생하기 전인 2000년대 초반에는 Fed 뿐 아니라 많은 중앙은행들이 테일러준칙을 금리 결정에 적극 활용했습니다. 시스템적인 금리 결정으로 시장이 정책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자는 취지죠.

옐런 의장은 하지만 금융위기가 발생한 2008년 기준금리를 ‘제로’로 내린 이후에는 이 준칙을 사용할 수 없게 됐다고 ‘변명’했습니다. 이해가 가는 변명입니다. 전례없는 경기침체가 왔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양적완화’와 ‘포워드가이던스’라는 전례없는 정책 도구들을 사용하게 됐기 때문입니다. 그 이후 Fed의 커뮤케이션은, 옐런 의장을 표현을 빌리자면, ‘진화’해 왔습니다.

포워드가이던스를 예로 들어 설명하겠습니다. 포워드가이던스는 예를 들어 ‘제로금리를 2015년까지 유지하겠다’는 구두 안내를 통해 시장의 기대를 형성하는 정책입니다. 이를 통해 시장 금리를 조절하겠다는 것이죠. 처음 포워드가이던스를 도입했을 때 Fed는 ‘어느 정도(some time)’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이 표현이 시간이 지나면서 ‘상당 기간(an extended period)’으로 바뀌었고 또 시간이 지나면서 ‘2013년 중반’ ‘2014년 말’ ‘2015년 중반까지’ 등 특정 시점으로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시점을 못박는 것은 경제 상황의 변화를 반영할 수 없다는 판단에 2012년 12월부터는 ‘실업률이 6.5%까지 떨어질 때까지’로 바뀌었고요. 최근에는 고용시장이 여전히 부진한 상황에서 실업률이 6.7%까지 하락하자 또 다시 표현을 바꿨습니다. “완전고용과 2% 인플레이션이라는 목표에 근접할 때까지”라는 식의 애매한 표현이 되었죠.

옐런 의장은 새 포워드가이던스에 대해 “한가지 지표가 아니라 고용시장, 인플레이션, 금융시장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금리를 결정하겠다는 뜻”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시장의 예측가능성과 정책의 효과 사이에서 Fed가 딜레마에 빠진 것으로 보이는데요. 워낙 경제 상황이 복잡하다 보니 이해도 되는 대목입니다.

결론적으로 이날 옐런 의장이 시장에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6개월’ ‘연내’ ‘실업률 몇 %’와 같은 한 가지 지표로는 더 이상 Fed 정책을 예측할 수도 없고, 예측해서도 안된다는 메시지입니다. 시장참가자들로서는 복잡한 방정식을 계속 풀어나가야 한다는 뜻이죠.

한 가지 팁을 드리자면 Fed는 ‘완전고용’과 ‘물가안정’이라는 두 가지 법적인 의무를 지고 있습니다. 옐런 의장은 오늘 ‘완전 고용’은 실업률, 장기실업자비율, 파트타임 근로자 비율, 임금상승률 등 다양한 고용시장의 요소를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Fed의 인플레이션 목표치는 2%입니다. Fed 정책은 이 두 가지에 의해 좌우됩니다. Fed의 통화정책 향방을 가늠하고 싶다면 매달 첫번째 금요일에 발표되는 노동부의 전월 고용지표와 상무부 경제조사국이 발표하는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수를 계속 업데이트하면서 자세히 살펴보는 게 도움이 될 것 같네요. 처음에는 어려워 보이지만 한 번 리듬을 타면 은근히 재미있을 수도 있습니다. / yoocool@hankyung.com

오늘의 신문 - 2024.05.03(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