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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환율 줄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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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용석 경제부 기자) 한국 정부의 외환시장 규모가 크며 한국 정부는 시장이 무질서한 예외 상황 때만 시장에 개입해야 한다고 미국 재무부가 지적했습니다. 한국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에 ‘경고’를 보낸 셈입니다. 하지만 정부는 이에 대한 공식 반응을 자제했습니다.

미국 재무부는 15일(현지시간) 발표한 ‘국제경제와 외환정책에 대한 반기 보고서’에서 “지난해 상반기에 한국 정부가 원화 가치 상승(원·달러 환율 하락) 속도를 제한하기 위해 시장에 개입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한국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 규모가 단순히 이자 소득을 위한 것으로 보기 어려울 정도로 크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한국 정부의 외환 정책이 좀더 투명해져야 하며 원화 가치 상승은 한국 정부가 제시한 경제의 수출의존도 완화 정책과도 일맥상통한다”는 견해를 밝혔습니다. 다만 주요 교역 대상국들의 외환시장 정책이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할 정도는 아니라는 입장을 보였습니다.

한국 정부는 이에 대해 공식 반응을 내놓지 않았습니다.

외환당국 관계자는 “미국 재무부 보고서는 국가 간에 의견을 제시하는 내용이 아니라 미국 행정부가 의회에 제출하는 내용인 만큼 정부 차원에서 발언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설명했습니다. 미국 재무부가 미국 의회에 보고한 내용에 대해 한국 정부가 이러쿵저러쿵 할 이유가 없다는 겁니다.

그러나 외환당국의 말을 종합하면 정부는 미국 재무부 지적에 상관없이 기존 환율 정책을 유지한다는 입장입니다. 정부의 환율 정책은 ‘급격한 쏠림현상’을 막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즉 환율의 방향성 자체는 기본적으로 시장의 흐름에 맡기지만 단기에 환율이 급등하거나 급락할 경우 경제에 부담을 줄 수 있는 만큼 ‘미세조정’ 차원에서 외환시장에 개입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이런 맥락에서 원·달러 환율이 최근 심리적 지지선으로 여겨지던 1050원이 붕괴된데 이어 1030원대로 떨어졌을 때 최희남 기획재정부 금융정책국장은 지난 10일 환율 쏠림을 경계하는 구두개입에 나섰습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도 같은 날 “쏠림 현상이 심화된다면 시장 기능이 원활하지 못하다는 것이기 때문에 시장 안정을 위한 조치가 필요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런 발언들에 이어 외환시장에선 정부 개입으로 추정되는 상당 규모의 달러 매수 주문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환율은 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전적으로 시장에만 맡기기는 어렵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하는 나라도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매년 1년에 2번씩 주요 교역국의 ‘경제·환율 정책 반기 보고서’를 통해 이들 국가의 환율 정책을 ‘감시’합니다.

한국 외환당국으로선 ‘경제 주권’ 방어를 위해 환율 흐름을 적절한 수준에서 ‘관리’하는 동시에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되지 않기 위해 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야 하는 셈입니다.

/ hohoboy@hankyung.com

오늘의 신문 - 2024.05.07(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