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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포기한 김준기 회장의 남은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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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정현 증권부 기자) 서울 대치동 동부금융센터 34층에 있는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의 집무실은 여느 대기업 회장의 집무실과는 다르다고 합니다. 3평 정도의 작은 공간에 김 회장을 돕는 전담 비서 인력도 달랑 1명 뿐입니다. 높은 곳에 있지만 전경을 감상할 수 있는 큰 창문도 없고 책상 위엔 온갖 서류들이 쌓여 있어서 다른 물건을 둘 자리도 없다고 합니다.

김 회장은 임원들과 중요 사안에 대해 논의할 일이 있으면 몇시간씩 장시간 회의를 하며 햄버거를 즐겨 먹는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죠. 검소함과 소탈한 면모와 더불어 회사에 대한 애정, 한편으로는 단단한 고집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런 강단으로 24세 나이에 미륭건설(현 동부건설)을 창업했고 금융, 제조업 등으로 사업다각화에 나섰습니다. 인수·합병으로 동부를 재계 10위권 그룹으로 키웠지만 몸집이 너무 거대해졌습니다. 유동성 위기를 맞은 동부그룹은 지난해 11월 대규모 재무구조 개선 계획을 발표했고 핵심자산 매각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김 회장의 오랜 꿈은 부품과 소재부터 완제품에 이르는 종합전자회사였습니다. 막대한 적자에도 20년 가까이 시스템반도체를 생산하는 동부하이텍에 공을 들여온 이유입니다.

그간 김 회장은 동부하이텍을 지키기 위해 사재를 털어 넣었고 아남반도체 인수에도 투자했습니다. 해외 기업들과의 제휴를 위해 직접 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동부하이텍도 매각 대상 목록에 이름을 올려놓아야 했습니다.

이제 종합전자회사로 김 회장의 남은 꿈은 동부대우전자에 실려 있습니다. 김 회장은 지난해 여름엔 공장을 찾아가 직원들을 격려했고 올해 들어서는 동부대우전자 본사 사무실을 그룹이 있는 대치동 동부금융센터로 끌어오기도 했습니다.

2004년 ‘재창업’ 선언 당시 그룹의 신성장동력을 기존 건설, 금융, 농업 분야에서 첨단산업으로 확장해 찾겠다고 한지 꼭 10년 만입니다. 하지만 전자라는 업종도 만만치 않습니다. 국내 시장은 삼성과 LG가 양분하고 있습니다. 가격으로는 저가공세를 퍼붓는 중국회사들과 경쟁해야 합니다.

동부대우전자의 지난해 실적이 이렇게 힘겨운 사업환경을 보여줍니다. 매출은 1조 7582억원으로 전년(1조8000억원) 대비 소폭 줄었지만 영업이익은 19억원으로 전년 대비 5분의 1 수준입니다.

동부대우전자 관계자는 “인수 첫해였던 만큼 시스템 확충과 설비 보완에 대한 투자 등이 필요했다”며 “해외 영업 네트워크 확보에도 주력한 만큼 올해는 투자 성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올해 동부대우전자는 상품군을 더 확대할 계획입니다. 지난달엔 제습기 시장에도 진출했고 6월 경엔 TV, 연말엔 로봇청소기도 선보일 예정입니다.

당장 급한 불은 자산 매각이지만, 눈물을 머금고 동부하이텍을 시장에 내놓은 김 회장의 잘려나간 꿈 한켠을 올해는 동부대우전자가 채워줄 수 있을지 지켜봐야겠습니다. /hit@hankyung.com

오늘의 신문 - 2024.05.07(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