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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의 새 UN 대사는 미국인 인질사건 배후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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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선 국제부 기자) 이란의 하산 로하니 대통령이 최근 뉴욕에 있는 유엔(UN)에 근무할 대사로 ‘하미드 아부탈레비’를 임명하면서 모처럼 화해 무드가 감돌던 미국과 이란 사이에 또 다시 미묘한 파장이 일고 있습니다. 하미드 아부탈레비의 예사롭지 않은 이력 때문입니다. 그는 1979년 이란 수도 테헤란 주재 미국대사관에서 벌어졌던 미국인 인질사건의 핵심 인물 가운데 한 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 이란은 호메이니의 이슬람혁명이 성공하면서 친미(親美)노선을 발판으로 독재와 부패를 일삼던 팔레비왕을 쫓아냈던 무렵입니다. 팔레비는 암수술을 핑계로 미국으로 망명했고, 이란은 팔레비 송환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하고 맙니다. 미국의 태도에 분노한 이란의 무슬림 대학생들은 테헤란 주재 미국 대사관을 침입해 외교관 등 52명을 인질로 붙잡은 채 444일을 억류했습니다. 미국과 이란이 적대국이 된 단초를 제공한 것이 이 인질 사태입니다.

미국의 지미 카터 행정부는 이듬해인 1980년 4월7일 이란과 국교 단절을 선언하고 4월말 특공대를 투입, 인질 구출 작전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사막의 모래폭풍 속에서 미군의 헬기와 수송기와 충돌하면서 특공대원 8명이 숨지는 참사가 벌어졌습니다. 이는 재선을 꿈꾸던 지미 카터에 악재로 작용하고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당선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이란이 미국에 큰 타격을 가져온 인질 사태의 관련자를 UN 대사로 임명한데 대해 미국 정부나 정치권도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않고 있습니다. 일단 미국 국무부는 아부탈레비의 비자 신청에 대해 아직까지 대응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비자 발급 문제는 자칫 미국 국회의원 선거 기간 정치권의 논란을 가져올 만한 민감한 이슈가 될 공산이 큽니다. 당시 인질 가운데 한 명인 익명의 외교관도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인질 사건과 관련된 어느 누구도 미국의 비자를 받아서는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이란과 서방세계와의 핵협상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블룸버그통신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이란 핵 프로그램을 억제하기 위한 포괄적 협상에 방해가 될 수 있다고 전했습니다. 논란의 인물을 내세운 이란의 진짜 속셈이 무엇인지 현재로선 속단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서방세계가 주도한 장기간의 경제 제재를 못 이겨 미국에 손을 내민 이란의 화해 제스처가 왠지 순수하게 보이지 않는 것은 사실입니다.

아부탈레비는 자신은 인질 사건과 큰 관련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미국과 이란 대학생들 사이의 통역과 협상의 역할을 담당했을 뿐 큰 역할을 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하지만 그의 사진은 이란 무슬림 학생들의 웹사이트(Taskhir)에 게시돼 있다고 합니다. 미국이 비자를 발급할지, 아부탈레비가 과연 UN대사로 어떤 활동할 수 있을지 주목되는 상황입니다. / sunee@hankyung.com

오늘의 신문 - 2025.01.02(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