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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주 회장의 조용한 장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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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길 증권부 기자)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이 모친상을 당한 건 지난 23일이었습니다. 일요일 새벽이었죠. 그런데 이날 부음을 전해들은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박 회장이 “외부에 알리지 말라”고 신신당부했기 때문입니다. 신문에도 부음이 나가지 않았습니다.

박 회장은 16세 때 아버지를 여의는 바람에 어머니에 대한 정이 더욱 애틋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자서전 ‘돈은 아름다운 꽃이다’에서 “어머니는 오늘의 나를 키운 멘토다. 미래에셋 지분의 50%는 어머니 것”이라고 썼지요.

월요일인 어제 저녁 지인의 얘기를 전해듣고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의 박 회장 상가를 찾았습니다. 조문하려고 보니, 상주인 박 회장과 큰 조카가 문상객을 맞더군요.

박 회장 모친 장례식을 지켜보면서 몇 가지 생각할 점이 있었습니다. 국내 굴지 금융그룹 회장의 모친 장례식인데도 모든 절차와 형식이 간소했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우선 주말을 낀 장례식이었는 데도 3일장에 그쳤지요. 발인이 화요일 새벽이었으니 외부 조문객에겐 월요일 저녁 정도의 시간만 허락됐던 것 같습니다. (사실 장례식장 내부도 북적이지 않고 조용한 편이었습니다.)

조화와 조의금을 전혀 받지 않았습니다. ‘조의금을 정중하게 사양합니다’란 안내문이 붙어 있더군요. 정상기 미래에셋자산운용 부회장은 “사정을 잘 모르고 조화를 보내주시는 곳이 있어 고민이 많다”고 했습니다.

박 회장은 틈틈이 장례식장을 돌면서 찾아온 조문객들에게 감사 인사를 건넸습니다. 개인적으로 재벌가의 장례식장을 몇 번 가본 적이 있는데, 하나에서 열까지 달랐던 것 같습니다. (일반적으로 재벌가 장례식장엔 대통령, 국무총리, 정치인, 각 기관 및 기업들의 조화가 수 백개 접수되고, 문상하려면 수십 미터의 긴 줄을 서야 하지요.)

박 회장 어머니의 운구차는 장지로 떠나기 전, 미래에셋이 소유하고 있는 서울 을지로 센터원 본사 빌딩에 잠시 들렀습니다. 병 치료로 지난 8년간 바깥 구경을 못한 어머니를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그룹의 터전인데, 정작 어머니는 생전에 보지 못했다는군요.

1997년 어머니가 사놓았던 땅을 팔아 미래에셋을 창업했으니, 박 회장 머릿속엔 여러 생각이 교차했을 것 같습니다.

박 회장의 조용한 장례식이 다른 재벌가에도 본보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끝)

오늘의 신문 - 2024.05.02(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