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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파업, 그리고 청와대와 검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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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준 경제부 기자) 청와대와 검찰. 그리고 의사. 언뜻 보면 아무런 관계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최근 이들은 서로 물고물리는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의사들의 진료거부(파업) 결의가 그 발단이었다.

의료행정을 담당하는 부처는 보건복지부다. 지금까지 의사들은 각종 정책에서 복지부와 협력하기도 하고, 갈등을 빚기도 했다. 최근 의사들이 파업을 결정한 것도 외견상으로는 의사협회와 복지부의 갈등이 원인이었다. 지금까지 갈등의 핵심은 정책이었다. 복지부는 원격의료를 허용하려고 하고, 의사들은 안된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 이면에는 20년 가까이 기득권을 빼앗겨온 의사들의 상실감이 더 크게 자리잡고 있지만….

그러나 지난 7일을 기점으로 국면이 전환됐다. 한국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두 기관, 청와대와 검찰이 개입한 것이 계기였다. 정책 갈등이 법과 감정의 갈등으로 비화한 것이다.

검찰은 공안대책협의회에서 의사파업 문제를 다뤘다. 강력 대응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소식을 들은 의사들은 흥분했다. 파업을 공안문제로 보는 시각이 의사들의 감정을 건드린 것이다. 공안회의에서 이 문제를 다룬 것은 자신들을 좌익으로 모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왔다.

비교적 조용할 것으로 예상했던 전공의들이 다음날인 8일 파업을 결의한 것도 공안회의의 영향이 컸다. 동네병원 파업은 정부가 보건소와 병원급 진료 확대를 통해 상당부분 대처할 수 있다. 그러나 대학병원 등 대형 병원들이 파업에 나서면 일이 달라진다. 과거 의약분업 때 겪었던 진료 혼란도 전공의 참여에서 비롯된 것이다. 복지부가 불안해 하는 이유다.

청와대는 파업을 막는 결정적 합의를 거부했다. 최근 새누리당과 의사협회는 원격의료에 대한 협의를 가졌다. 새누리당은 파업을 막아야겠다고 판단했고, 의사협회는 새누리당이 자신들의 이해를 대변해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 결과 원격의료 입법을 서두르지 않기로 양측은 사실상 합의했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청와대가 나서 태클을 걸었다. 원격의료는 박근혜 대통령이 지속적으로 강조해오고 있는 현안이었다. 의사협회의 파업이라는 무력시위에 물러서면 다른 정책도 집행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 작용한 것 같다는 게 복지부 주변의 해석이다.

당면한 의사들의 파업을 막는 것과, 정부 정책의 강력한 집행이라는 선택이 있었지만 결국 청와대는 후자를 택한 것이다. 복지부내에는 내놓고 말은 못하지만 파업을 막는 것이 더 급하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많았다. 당장 국민들의 불편을 걱정해야 하는 복지부로서는 아쉬움이 더 클 수밖에 없었다. 파업을 막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날아가 버렸기 때문이다.

과거 노조운동이 격렬했을 때 노동법상 3자개입 금지 조항 문제를 놓고 한국 사회가 격렬한 논쟁을 벌였던 것이 기억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junyk@hankyung.com

오늘의 신문 - 2024.05.18(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