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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지는 '비법(非法)경제'...규제는 어디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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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윤선/박병종 국제부 기자) 미국의 모바일 차량 중개 서비스업체 우버는 지난해 8월 한국에 진출하자마자 서울시로부터 고소를 당했다. 우버는 소비자가 휴대폰 애플리케이션(앱)으로 호출하면 계약한 리무진 업체 소속 차량이 고객을 태우러 가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국내에서는 운수사업법 위반이라는 얘기다. 서울시 관계자는 “인허가 절차 없이 유상운송이나 운전자 알선행위를 하는 것은 불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생각은 다르다. 우버는 차량을 소개해주는 정보제공업체라는 것이다. 구태언 테크앤로법률사무소 변호사는 “우버가 불법이면 ‘배달의 기수’와 같은 배달음식 중개 서비스나 호텔 예약 서비스도 모두 불법이라는 얘기”라고 반박한다.

우버와 같은 업체의 ‘업역(業域)’은 기존 법 테두리에는 없다. 합법도 불법도 아닌 ‘비법(非法)’의 영역이다. 창의적인 기업가들이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내면서 법이 이를 따라오지 못하는 현상이 속속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새로운 일에 대한 규제여부는 당국의 고민거리다. 새로운 업종이 생길때마다 관련 법을 만들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방치할 수도 없는 실정이다.

◆커지는 ‘비법경제’

우버는 빠르고 친절한 서비스로 ‘운송업이 혁신’으로 불리며 세계적으로 퍼졌다. 하지만 가는 곳곳마다 기존 택시업계의 반발에 부딪쳤다. 프랑스에서는 택시기사들이 우버 기사와 승객을 공격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미국에선 정부까지 반발하고 있다. 정부가 ‘메달리온’이라는 택시 자격증을 그간 돈을 받고 팔아왔기 때문이다.

미국의 식자재 서비스 업체 자이콘푸드도 ‘비법경제’의 대표적 사례다. 자이콘푸드의 사업모델은 간단하다. 예를 들어 몇월 몇일에 워싱턴 A주차장에 고급 소고기를 배달할테니 필요한 고객은 주문을 하라고 홈페이지에 띄운다. 주문이 모이면 농장이나 가공공장과 구매 계약을 한다. 그리고 트럭을 보내 정해진 날짜에 배달하고 고객들은 물건을 받아가면 끝이다. 중간 유통단계를 생략해 마트보다 가격이 싸고 품질도 좋다. 하지만 곧 지역 마트 등의 고소가 이어졌다. 자이콘푸드는 스스로를 ‘물류업’이라고 주장하지만 사실상 자신들과 다름없는 유통업을 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최근 화제가 된 비트코인도 비슷한 경우다. 보증기관이 없는 가상화폐를 규제하는 법률은 기존엔 없었다. 비트코인이 활성화되면서 각국별로 합법, 불법 여부를 정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분명한 기준 없이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불공평 vs 소비자 편익

비법경제와 갈등하는 기존 업자들은 ‘불공평’을 이유로 내세운다. 우버의 경우, 택시업자들은 영업을 위해 관련 자격증을 얻어야 하는 등 비용을 쓰는데 우버는 공짜로 자신들과 같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이콘푸드에 반발하는 마트들도 마찬가지다. 가게 임대료도 내지 않고 유통업 자격증도 없이 인터넷을 통해 식자재를 파는 건 공정한 경쟁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비트코인의 적은 각국 중앙은행들이다. 비트코인이 각국의 통화정책을 흔들 수 있는 위험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중국은 하루 위안화 변동폭을 1%로 통제하고 있지만, 비트코인 거래소에서 위안화와 달러가 모두 사용되면서 비트코인을 매개로 규제받지 않는 외환시장이 출현했다.

규제를 반대하는 쪽에선 비법경제가 소비자 편익을 증대시키는 만큼 이를 막아선 안된다고 주장한다. 우버는 미국에서 30~40분씩 택시를 기다려야 했던 불편함을 상당부분 개선시켰다. 한국에서도 안전하고 고급스러운데다 앱을 통한 결제가 간편해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자이콘푸드는 창업 3년만인 지난해 매출 1000만달러를 돌파할 만큼 인기를 끌고 있다. 비트코인도 수수료가 낮고 소액결제가 간편하다는 측면에서 기존 신용카드보다 효율적이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이자 법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고(故) 로널드 코스는 “거래비용이 적은 상태에서 법이 아닌 개인의 자유로운 계약이 사회 후생을 최적화 한다”고 강조했다.

◆규제는 소비자 보호에 국한되야

규제 당국 입장에서는 고민이 커질 수 밖에 없다. 특히 대통령이 직접 나서 ‘규제 혁파’를 내세우는 한국은 더욱 그렇다. 규제개혁위원회 관계자는 “업종이 늘어나는데 규제의 절대 수를 줄이라는 건 솔직히 모순”이라고 토로했다.

법 전문가들도 업종 증가에 따라 규제가 늘어나는 건 어쩔 수 없다는 설명이다. 다만 최근의 늘어나는 규제들의 상당부분이 기존 업체들의 로비를 반영해 이들을 보호하는 데 치중하고 있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다.

김상규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식자재 운송 업체의 경우 마트와 동일한 위생 규제를 받을 필요는 있겠지만 이는 소비자를 보호하는 측면에 국한돼야 한다”며 “기존 업체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법으로 업의 영역을 정하면 혁신은 줄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기존 업체들이 소송을 하면 새로운 법보단 판례를 만들고 앞으로 비슷한 사례가 나오면 적용하는 방법을 써야 한다“고 설명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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