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대의원대회는 앞으로 3년간 한국노총을 이끌 김동만 신임 한국노총 위원장의 취임식을 겸하는 의미가 있는 자리였습니다. 그리고 방 장관은 2009년 이영희 전 장관 이후 5년만에 고용부 장관으로선 처음으로 자리를 채웠습니다. 이명박 정부 시절 ‘MB맨’들이었던 임태희, 박재완 전 장관이나 관료 출신인 이채필 전 장관은 모두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방 장관의 이번 참석은 최근 방 장관이 김동만 위원장의 당선을 축하하기 위해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 본부를 찾았을 때 김 위원장이 제안하면서 성사됐습니다. 작년말 철도노조가 역대 최장기 파업을 벌일 때 민주노총 본부에 대한 공권력 투입에 반발해 ‘노정 대화’가 단절된 상태여서 정부로서도 대화 복구가 시급한 상황이었습니다. 통상임금이나 근로시간 단축, 정년연장에 따른 임금체계 조정 등 산적한 노사 현안을 타협하기 위해선 정부 뿐 아니라 노동계 및 경영계와 대화는 필수적입니다.
김 위원장의 제안으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는 지난 21일부터 ‘노사정 소위’도 가동되기 시작했습니다. 비록 공식 대화 기구인 노사정위에는 한국노총이 불참하고 있지만 국회에 노·사·정이 만나는 자리가 마련돼 대화의 물꼬는 터진 셈입니다.
방 장관은 이날 축사에 앞서 ‘생상성 향상과 고용 창출을 뒷받침하는 노동시장 구축’, ‘다양한 형태의 일자리 확산’, ‘법과 원칙이 준수되는 공정한 노동시장’ 등 현 정부가 추진중인 노동 정책들을 원고에 담았었습니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선 최대한 노동계를 자극하지 않으려는 듯 ‘생산성 향상’이나 ‘다양한 형태의 일자리’, ‘법’과 ‘원칙’ 등 자칫 민감하게 들릴 수 있는 단어들은 뺐습니다. 그리고 “정부가 먼저 정성을 다하겠다”는 요지로 짧게 말했습니다.
방 장관은 27일에 한국경영자총협회 총회에도 참석할 예정입니다. 관례상 차관이 가는 자리지만 노사를 한 번이라도 더 만나겠다고 장관이 자진해서 나섰다고 합니다.
이처럼 고용부 장관이 동분서주하는 모습에서 박근혜 정부의 노동시장 정책을 조금이나마 읽을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전날인 25일 박 대통령은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발표했죠. 그런데 고용노동정책 부문에 당초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던 ‘노동시장 유연화’가 빠졌습니다. 많은 전문가들은 비정규직 보호는 강화하고 정규직 과보호는 완화해야 한다고 분석합니다. 그래야 양극화를 해소할 수 있고 기업도 인력을 탄력적으로 운용하면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제 발표된 정책은 비정규직 보호에만 집중돼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김유진 고용노동부 기획재정담당관의 설명은 이렇습니다.
“기업의 경영상 해고 자율성을 높이는 등 노동시장 유연성을 높이는 정책은 검토는 했지만 넣지 않았다.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은 매번 내놓을 때마다 분란만 커지고 진도는 안 나가는 것이 현실이다. 노동시장 개혁은 노사정이 여러 현안을 함께 놓고 일정 부분 서로 양보하는 ‘패키지 딜’로 가야 진전이 있을 수 있다. 대화를 통해 해결해야지 일방적으로 정책을 내놓는다고 될 일이 아니다.”
박근혜 정부는 한편으로는 ‘대타협’을 강조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철도파업 강경대응처럼 ‘법과 원칙’을 강조합니다. 개별 근로자에게는 정년 연장(지난해 4월 법 통과), 근로시간 단축, 고용률 70% 달성 목표 제시 등 상당히 시혜(施惠)적인 정책을 펴지만 철도노조나 전공노·전교조 등 불법 단체 행동에는 매우 엄정한 ‘투 트랙’ 전략을 펴는 것이죠. 노동시장 유연화도 비정규직 보호는 제도로 강화하되 정규직 유연성은 대화로 풀어가는 투 트랙을 쓰는 것 같습니다.
물론 이날 김 위원장은 통상임금 지도지침 즉각 폐기, 5월1일 노동절 마라톤 대신 대규모 집회 개최 등 겉으로 보기에는 상당히 강경한 입장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강공은 신임 위원장으로서 노조원들에게 ‘선명성’을 보여주기 위한 일종의 전략이라는 것이 한국노총 내외의 분석입니다.
1998~1999년 외환위기 상황에서 노사정위 출범을 이끌어냈던 박인상 전 한국노총 위원장도 이날 “노동계는 투쟁할 때 투쟁하고 협상할 때 협상할 줄 알아야 한다. 노조 조직률 10% 미만 상태로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 것인가. 비정규직과 외국인 노동자 등 소외 계층을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실천했고 무슨 결과가 나왔는지 점검해야 한다”며 쓴소리를 했습니다.
이날 대의원대회에는 방 장관 외에 이희범 경총 회장, 김대환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위원장,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 김한길 민주당 대표 등도 참석했습니다.
정치권은 사람 많이 모이는 곳에 가면 으레 그렇듯 ‘구애’를 폈습니다. 황 대표는 “노조 전임자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제도를 정비해 전임자 근로시간 면제를 확대하겠다”고 했고, 김 대표는 “이명박 정부로부터 이어지는 노동탄압이 도를 넘고 있다”는 말로 박수를 이끌어냈습니다. /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