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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준 칼럼) 한인교포 결집력으로 이룬 버지니아주 동해 병기 법안 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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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준의 한국정치 미국정치) 2012년 버지니아주가 승인하는 모든 공립학교 교과서에 일본해 (Sea of Japan) 와 동해 (East Sea) 병기를 의무화하는 법안이 버지니아주 상원에 상정되었지만 빛을 보지 못하고 부결되었다. 한인 교포들의 정치적 역량이 크게 부족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4년엔 달랐다. 한인 교포들은 독도를 일본 영토라고 주장하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망언과 야스쿠니 신사 참배, 종군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폄하 발언 등에 대한 분노가 강하게 결집했고, 그 결과 교포들의 정치력도 강해졌다. 버지니아 주 의회에서 동해 병기 법안이 압도적 표차로 통과된 것은 결집력의 결과였다고 할 수 있다. 한인들은 이번 일을 통해 나름의 정치력을 과시한 것이다.

미국은 연방헌법에 따라 50개 주마다 하원과 상원이 있다. 어떤 법안이든 효력을 발휘하려면 반드시 상원과 하원을 통과해야 한다. 따라서 한국에 배해 법안 채택 과정이 다소 복잡하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물론 이번 법률은 연방 의회에서 통과된 법과는 달라 버지니아주에만 적용되지만 앞으로 동해에 대한 인식이 미국 전역에 확산되는 계기가 될 것이기 때문에 중요하다.

버지니아주 의회의 동해 병기 법안은 지난 1월13일에 상원 공립교육소위원회와 교육상임위원회를 통과했고, 상원 본회의에서도 쉽게 통과했다. 이후 1월30일에 하원 교육소위원회를 찬성 5표, 반대 4표로 극적으로 통과했고, 2월3일에는 하원 교육위원회에서는 찬성 18표, 반대 3표로 압도적으로 의결했다. 최종적으로 2월6일 하원 전체회의에서도 찬성 85표, 반대 15표의 압도적인 표차로 통과됐다.

하원 전체회의장에서는 한인 교포 400명이 모여 서로 얼싸안고 환호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일본 정부의 강력한 로비 활동에도 굴하지 않고 교포들끼리 돈을 모아 버지니아 남쪽 끝에 있는 리치몬드 주 의사당을 수십 번씩 전세버스로 오가면서 보여준 탄탄한 조직력과 단결력은 미국 내 한인들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다. 나 역시 버지니아에 사는 교포로서 뿌듯하다.

미국에서 제일 로비를 잘하는 나라를 꼽으라면 역시 유대인이다. 반대로 대한민국은 아마도 로비 활동을 가장 잘 못하는 나라가 아닌가 싶다. 한국에서는 로비 활동이 허용되지 않는데다 로비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 또한 강하기 때문일 것이다. 로비에는 으레 돈이 따라 다닌다. 액수도 엄청나다. 때로는 선거에서 당락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을 정도다. 실제로 돈을 쓰지 않는 로비는 하나마나라고 할 정도로 미국의 정치는 돈에 좌우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미국 정치에서 유대인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돈도 엄청나게 쓴다. 미 국회의사당 바로 앞 대형 빌딩에 유대인 정치행동위원회(PAC·Political Action Committee)가 자리잡고 있다. 이 조직은 한 마디로 어떤 특정 후보에 재정적 도움을 주는 것이 목적이다. PAC는 연방정부에 등록해야 하고, 한 사람이 PAC에 선거당 5000달러까지 기부하는 게 법적으로 허용돼 있다. 그 돈을 모아 누구에게 선거자금으로 줄 것인지를 결정하는 사무실이 바로 국회의사당 코 앞에 자리잡고 있다.

내가 연방하원의원이던 시절, 하루는 일리노이 주 출신 동료의원이 PAC에 가서 재정적 도움을 청해보라는 제안을 했다. 큰 맘 먹고 자존심을 다 접어두고 PAC로 찾아 가면서 우리도 교포 후보들을 도와주는 이런 조직이 있었으면 하고 부러워했던 기억이 난다. 미국 공화당은 흑인을 노예로부터 해방시킨 링컨 대통령이 창당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흑인들은 대부분 백인 정당으로 바뀐 공화당을 떠나 민주당에 가입했고, 미국내 유대인들과 일본계도 압도적으로 민주당을 지지해 왔다. 그러니 아시아계에, 공화당원인 내가 PAC를 찾아간 것은 어리석은 일이었다. 한 푼도 기부할 수 없다는 답변을 듣고 무거운 마음으로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내가 국회의원이던 1990년 초만 해도 한인 교포들의 정치력은 거의 전무했다. 게다가 인종차별이 심했는데, 그 당시 나는 백인 지역구에서 온갖 어려움 속에서 힘든 선거운동을 했다. 미국시민이어야 투표권이 있는데 시민권을 가진 한인이 많지 않았고 투표 참여율도 저조한 편이었다. 정치모금에 신경을 쓸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근래에 와서는 교포 1세는 물론이고, 1.5세, 2세들도 정치모임에 적극 참여하는 등 활동이 두드러진다. 나도 그때 이들이 곁에 있었으면 얼마나 든든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난 조국이 힘이 없었을 때 미국 국회의원을 지내면서 서러움을 많이 겪었다. 하지만 이제 대한민국의 국력이 강해지니 미국인들의 한국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진 것을 확연히 느낀다. 또 우리 교포들이 미국에서 정치적 영향력이 두터워진 것도 대한민국이 강해졌기 때문이다. 모국이 강해야 교포들도 정치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머잖아 내 뒤를 이을 연방 하원이 나올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버지니아주에서의 이번 승리는 우리 한인 교포들도 단결하면 미국에서 얼마든지 정치력을 펼 수 있음을 보여줬다. (끝)

김창준: 전 미국연방하원의원. 한국경제신문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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