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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M 정상화만 기다리는 분식점 사장님,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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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정 금융부 기자) “이러다가 우리도 길거리에 나앉게 생겼습니다.” 서울 신도림동에서 떡볶이와 국수 등을 파는 분식점을 운영하는 박모씨(남·48)는 이렇게 말하며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대규모 고객정보 유출 사건 이후 금융당국이 금융사들의 전화영업(TM·텔레마케팅)을 제한하면서 그 유탄이 콜센터 근처 상권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지요.

사연은 이렇습니다. 박씨의 분식점 근처에서 한 보험사의 대형 콜센터가 있습니다. 전화로 보험상품 가입을 권유하는 콜센터에서 근무하는 텔레마케터만 수백명에 달합니다. 이른 시간에 콜센터로 나오느라 제대로 아침식사를 챙겨먹지 못하고 출근하는 텔레마케터들은 박씨의 분식점에서 샌드위치나 김밥을 사들고 출근하는 일이 잦았습니다.

점심식사 시간에는 비교적 가격이 저렴하고 꽤 다양한 메뉴가 있는 박씨의 분식점에 텔레마케터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일도 부지기수였습니다. 점심과 저녁식사 시간 사이에는 출출한 배를 채우기 위해 비빔국수 등을 먹으러 오는 텔레마케터들도 꽤 있었고요.

하지만 지난달 말부터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금융당국은 고객정보 유출에 따른 2차 피해를 막기 위해 지난달 말부터 금융사들의 TM을 전면 금지했습니다. 부작용이 커지고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지난 14일 보험사를 시작으로 일부 TM을 허용했지요.

그러나 실제 TM을 제대로 하고 있는 보험사는 거의 없습니다. 한화손해보험, 메리츠화재 등 소수 보험사만 기존 인력의 10% 안팎 수준에서 영업을 하고 있는 정도지요.

보험사들이 합법적으로 수집한 고객정보라는 사실을 자체적으로 검증해 최고경영자(CEO) 확약서를 붙여 금융당국에 제출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혹시 한두건이라도 문제가 발생하면 영업정지, CEO 문책 등 중징계가 불가피해 보험사들은 일일이 수백만건의 고객정보를 확인하고 있습니다.

녹취록을 다시 듣고, 수년 전 서류를 재점검하는 식이지요. 다음달이나 돼야 어느 정도 영업이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습니다.

이러자 금융사들은 텔레마케터를 반강제적으로 휴가를 보내거나, 정상 영업때보다 늦게 출근하고 일찍 퇴근토록하고 있습니다. 영업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상품이나 고객 응대 관련 교육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어 굳이 평소대로 콜센터에 텔레마케터들을 붙들고 있을 필요가 없어서지요.

들어보니 분식점, 식당, 슈퍼마켓, 문방구, 정수기 업체, 인쇄용지 납품 업체부터 텔레마케터들에게 매일 요구르트를 배달하던 아주머니까지 서울 대형 콜센터 근처 상권이 모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합니다.

텔레마케터들은 언제 정상화될 지 모르는 영업과 소득 공백으로 분통을 터뜨리고 있고, 주변 상권은 예상치 못한 악재에 속앓이를 하고 있습니다. 성급한 금융당국의 대책 발표에 따른 후폭풍이 언제쯤 가라앉을 지 모르겠습니다. (끝)

오늘의 신문 - 2024.05.21(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