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리아 전기’는 로마 총독으로 부임한 카이사르가 지금의 프랑스에 해당하는 갈리아 전역에서 8년간의 전쟁을 통해 로마의 지배권을 확고히 다진 기록을 담은 책이죠. 카이사르의 글에 대해 “군더더기 없는 문체”, “진정한 귀족이기에 가능한 문장”이라는 게 나나미의 평가입니다.
나나미가 극찬한 갈리아 전기의 맨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끝납니다. ‘이로써 갈리아는 다시 평온해졌다.’ 나나미는 이에 대해 “저자에게 ‘이게 끝인가요?’라고 물어보고 싶은 대목”이라고 표현합니다. 수년을 이어온 치열한 격전, 자국 반대파의 정치적 공격에 시달리면서 어렵게 남긴 기록의 끝맺음치고는 너무 담담한 표현 아니냐는 겁니다. 그러면서 모든 갈등과 논란을 매듭지은 자(者)만이 쓸 수 있는 자부심의 표현이라고 다시 한번 극찬합니다.
20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정기총회를 지켜보면서 ‘로마인 이야기’의 이 대목이 문득 생각났습니다. 작년 11월부터 전경련은 이날 정기총회에서 새 회장단 영입 후보를 발표한다고 공지해왔습니다. 공개적으로 누구를 영입한다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비공식적으로는 3~4명의 주요 그룹 총수를 새 회장단으로 맞이하겠다는 말을 해왔습니다.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 이중근 부영 회장 등 7~8개 그룹 회장이 물망에 올랐죠.
그런데 정기총회를 하루 앞둔 19일, 전경련에선 이런 말이 흘러나왔습니다. “내일(20일) 정기총회에서는 신입 회장단을 발표하지 않는다.” 실제로 이날 총회에서 회장단 영입은 회의 안건으로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허창수 전경련 회장도 인사말에서 ‘영입’ ‘신입 회장단’이란 단어조차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지난 100여일 간 그렇게 새 회장단을 영입하겠다고 공언해 놓고선, 이걸로 끝인가요?’라고 묻고 싶어집니다. 전경련은 새 회장단을 영입하겠다는 방침을 작년 11월 회장단 정례회의 직후 언론에 공식적으로 밝혔습니다. 재계 이익만 대변하는 단체라는 항간의 오해를 불식시키고, 한국 산업의 변화상을 반영해 50대 그룹 총수로 회장단 범위를 넓히겠다고 했습니다. 전경련이 이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쇄신하겠다고 국민들에게 약속을 한 겁니다.
그런데도 전경련은 100일간 새 회장단 영입 과정은 어떻게 진행했으며, 어떤 의사결정을 거쳐 이번 정기총회에서 발표하지 않는지에 대해 일언반구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전경련 측은 “새 회장단 영입을 백지화한 건 아니고, 후보에 오른 총수들이 정기총회 일정에 맞춰 수락의사를 밝히기 어려워 시기를 미룬 것일 뿐”이라며 “앞으로도 영입 작업은 계속하고 내년 정기총회에서 공식 안건으로 다루겠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전경련 임직원들 사이에서도 ‘이게 뭐냐’는 반응이 상당합니다. 내부에서도 ‘영입작업 실패’라고 보는 것이겠죠.
이번 새 회장단 영입 백지화로 전경련은 앞으로 더 큰 ‘쇄신 요구’에 직면할 수 있다는 게 재계 전망입니다.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내는 재계 대표 경제단체로서 역할과 위상을 되찾으라는 요구가 쏟아질 것이란 얘기입니다. 또 쇄신 요구가 일부 야당 정치인들이 때때로 제기하는 ‘전경련 해체론’으로 번지지 않는다고 누구도 보장할 수 없습니다. 전경련이 언론과 국민에 내놓은 약속을 아무 일 없었던 것인 양, 그냥 넘어가려는 행태를 반복한다면 말입니다. /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