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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대 연봉 베스트 애널리스트의 '빛과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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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지연 증권부 기자) 전날 억대 연봉을 받는 판매왕들의 이야기가 지면에 실렸습니다. 고객들과의 신뢰를 쌓고 실적을 올리기 위해 발품을 팔아야 하는 영업맨들의 고충은 어느 업종이건 비슷할 것 같습니다. 금융투자업계에도 성격은 좀 다르지만 알고 보면 영업사원이나 다름 없는 존재들이 있습니다. 바로 애널리스트들입니다.

‘화이트칼라’로 분류되는 애널리스트들이 무슨 영업사원이냐고요? 물론 애널리스트의 본업은 분석 업무입니다. 주식투자에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고 이를 분석, 가공해서 투자자에게 제공하는 것이지요. 지적인 이미지에 억 단위 연봉을 받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애널리스트도 한때는 인기 직종이었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억대 연봉 애널리스트는 쉽게 되는 게 아닙니다. 산업계에서 바로 스카우트가 돼 오는 경우가 아니라면 일반적으로 애널리스트가 되기 위해 RA(리서치어시스턴트) 시절을 거쳐야 합니다. 정규직 신입직원과 비슷한 수준인 3500만~4000만원으로 시작해 경력 6년차의 대리급 애널리스트 정도가 되면 연봉은 5000만~6000만원선으로 오른다고 합니다. 예상보다 적죠?

흔히 들리는 억대 연봉은 보통 차·부장급 시니어 애널리스트들의 얘기입니다. 하지만 이들의 연봉도 어떤 업종을 담당하는지, 고객(펀드매니저나 기관 운용역 등)들에게 얼마나 인기가 있는지에 따라 천차만별입니다. 이른바 ‘베스트’급에 올라야 평균 연봉이 1억5000만원을 넘어갑니다. 정보기술(IT) 자동차 등 시가총액 비중이 큰 업종에서 상위 1~3위 안에 들어야 2억~3억원 가량의 연봉을 받습니다.

베스트 애널리스트는 어떤 기준으로 선정될까요? 절대적인 기준이 되는건 바로 ‘폴(POLL)’입니다. 법인영업부와 고객들이 참여하는 인기투표 같은 건데요. 쉽게 말해 누가 투자하는데 유용한 정보를 발빠르게 열심히 발굴해 줬느냐를 평가하는 겁니다.

베스트 애널리스트가 되고 순위를 유지하려면 살인적인 스케줄과 업무량을 견뎌야 합니다. 시황 분야에서 베스트에 오른 한 애널리스트는 하루 평균 6건의 프레젠테이션과 설명회 등을 소화한다고 합니다. 한 건당 1시간 정도 소요된다는걸 감안하면 하루 종일 돌아다니면서 했던 말을 반복하고 또 반복하는 셈입니다. 인기있는 애널일수록 찾는 사람도 많고 기자들도 멘트를 받기 위해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해대니 숨돌릴 틈이 없다는 설명입니다.

아침 7시반부터 보통 6시까지 외부 세미나와 일정을 소화하고 나면 다음날 PT에 사용될 자료를 준비하거나 분석 리포트를 쓰느라 밤을 새기도 일쑤라고 하네요. 인기있는 업종은 그나마 낫지만 시장의 관심에서 밀려나 있는 업종 애널리스트라면 영업사원처럼 펀드매니저 책상 앞에 줄을 서서 기다렸다 5분 정도 투자 아이디어를 설명하고 돌아서는 일도 많다고 합니다.

증권사들의 구조조정으로 애널리스트 숫자가 줄면서 남아있는 애널리스트들은 새로운 업종을 추가로 담당하기도 하는 등 업무 강도는 더 세졌습니다. 경쟁 역시 치열하구요. 하지만 요즘은 재계약을 못하고 방출이 되면 그냥 끝이라고 합니다. 비용 절감을 위해 인력을 줄이는 상황이어서 아무리 베스트급이라도 1억~2억씩 주고 스카우트를 해줄 리가 만무하다는 거죠.

때문에 연봉이 깎여도 재계약을 할 수만 있다면, 연봉이 유지만 된다면 그저 감사할 따름이라고 합니다. 애널리스트 출신의 한 중소형 증권사 리서치센터장은 “사실상 12년간 내 연봉은 동결 상태”라고 전하기도 했습니다.

얼마전 CJ E&M의 실적 등 사전정보를 유출한 애널리스트들이 문제가 되기도 했는데요.

수많은 애널리스트들 사이에서 매니저 눈에 들어 베스트급에 오르려면 뭔가 차별화된 게 있어야 하다 보니 이런 일도 비일비재 할 수밖에 없다고 하네요. 입지가 좁아지고 있는 애널리스트들을 보면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란 말이 절로 떠오릅니다. (끝)

오늘의 신문 - 2025.01.03(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