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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 털린' 대한민국, 주민번호 관련 법 손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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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성태 정치부 기자, 국회반장) 신용카드사를 통한 개인정보 대량 유출사건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총리 부총리 안정행정부장관 등 부처 수장들이 국회에 끌려나와 ‘뭇매'를 맞고 있지만, 재발방지를 위한 뾰족한 수를 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향후 2차 피해가능성을 차단시켰다는 정부측 주장은 과학적 근거가 전혀 없는 희망사항일 뿐이다. 일반 국민들도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사이버 공간에서 자발적으로 신상정보를 공개해온 ‘원죄’에다, 온갖 스팸 마케팅과 보이스 피싱 등에 만성이 돼 ‘피해의식'이 엷어져 버린 탓이다.

국민 대부분 신상이 ‘먼지털기’식으로 공개된 사태의 배경엔 일반인들이 간과하고 있는 몇가지 ‘불편한 진실'이 존재한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요람에서 무덤까지’ 갖고 가야할 주민번호가 바로 개인정보 유출의 주범이란 점이다. 생년월일,성별,출생지등 개인정보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13개 숫자의 주민번호는 축적의 용이성 등으로 불법유출을 확대재생산시키고, 한번 유출되면 피해회복이 불가능하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지난 10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개인정보 대량유출은 IT강국이다 보니 생긴일"이란 정홍원 총리의 말이 논란이 됐다. 의원들의 질타가 빗발졌지만, 정 총리의 사고수준을 탓하고 말게 아니다. 정보유출 후유증 등 정부의 사태인식이 본질에서 얼마나 비켜나 있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개개인에게 ‘평생 따라붙는' 주민번호는 과거 유신시대,권위주의의 산물이다. 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제도이며, 개인에게 번호를 붙여 식별하는 최초의 주민등록번호는 1968년 10월 20일부터 사용됐다.

간첩 색출,불순분자의 병역기피 등 분단국가의 현실적 이유에서 도입된 주민번호는 이제 신용사회와 정보화사회의 근간을 뒤흔들 최대위협요인으로 떠올랐다. 개인정보 유출로 인한 피해는 물론이고, 암시장으로 흘러든 개인정보로 인해 얼마만큼의 ’2차 피해’가 생겨날지 등은 현재로선 추정조차 할 수 없다.

‘중국의 양쯔강 노인들도 한국인 주민번호 한개씩은 갖고 있다’는 말이 퍼질 정도로 한국 주민번호는 전 세계의 ‘공유재'가 됐다. 백재현 민주당 의원은 지난 11일 방송통신위원회의 분석자료를 근거로 “지난 2009년부터 2013년까지 총 33만 9천555개의 국내외 인터넷 사이트에 한국민의 주민번호가 그대로 노출됐다"고 주장했다.

하루 평균 186개 웹사이트에 주민번호가 유출된 셈이다.주민번호가 유출된 웹사이트 가운데 국내 도메인이 29만 6천100건, 국외 도메인이 4만 3천455건을 차지했다.

국외 사이트 중에는 국가별로 중국이 2만 120건으로 전체의 절반 가까이(46.3%)를 차지했고, 미국(8천971건), 베트남(1천84건), 홍콩(1천9건) 등이 뒤를 이었다.

방송통신위는 주민번호가 유출된 국내외 웹사이트를 발견하면 운영자들의 협조 아래 삭제하고 있다고 밝혔으나, 강제성이 없어 운영자가 확인되지 않거나 연락이 닿지 않을 때에는 삭제가 사실상 불가능한 실정이다.

개인정보 유출사태후 국회에서 주민번호 개정 움직임이 일고 있다.

민병두 민주당 의원은 12일 주민번호 유출자에 한해 주민번호 변경을 허용하도록 하는 ’주민등록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개인정보 유출자는 일정 요건에 의해 주민등록번호 변경을 허용하고, 새로운 주민번호는 생년월일 성별 출생지 등 고유한 개인정보가 아니라 ‘임의적인 숫자'를 부여하도록 했다.다만, ‘임의적인 숫자'방식의 주민번호는 변경이 허용된 사람과 법 시행 이후 새로 출생한 사람에게만 적용하도록 했다.

민 의원은 ”이번 정보유출과 신용사회를 무너뜨리는 주범은 ‘국민통제형 주민번호"라며 ”정보화시대에 맞는 임의형식의 주민번호로 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와 여당도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대책마련에 착수했다. 지난 1월27일 대통령 지시로 안전행정부,금융위원회,새누리당이 비공개 차관급 당정협의를 개최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정은 앞으로 전문가 간담회 등을 거쳐 개인정보 보호 대책을 대통령에게 보고할 방침이다.

주민등록번호 변경의 필요성에 공감하지만, 이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나 혼란 등 고려해야 할 사항도 많다. 하지만, 주민번호 변경의 가장 큰 장애요소는 ‘국민 저항’이라고 한 전문가는 전했다.

반세기 가까이 주민등록번호 체제에 너무 익숙해져, 새로운 제도도입에 따른 불편함을 국민 상당수가 감수하지 않을 것이란 진단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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