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투자은행가의 세계에, 그것도 외국계 증권사의 최고위직인 한국 대표에 프로야구 선수 출신이 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안성은 도이치은행그룹 대표가 그 주인공입니다. 프로야구단 한화이글스가 안 대표의 첫 직장이었습니다. 안 대표가 프로야구 선수가 된 사연이 재밌습니다.
안 대표는 서울대학교 야구부에서 투수로 활동했는데요, 서울대 야구부는 서울대 학생들로 구성된 순수 아마추어 야구팀입니다. 야구특기생들이 모인 다른 대학 야구부와의 경기결과가 항상 골프패였던 건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만년 콜드패’의 서울대 야구팀이 처음으로 콜드패를 면한 경기가 바로 안성은 투수 경기에서였답니다. 안 대표는 지금도 서울대 야구부 역사상 처음으로 콜드패를 면한 팀의 투수라는 점을 자랑스러워한답니다.
그런데 당시엔 자랑스러움으로 그치지 않고 야구에 단단히 미쳤던 모양입니다. 한화이글스 2군에 입단테스트를 신청했는데 대뜸 합격이 됐다는군요. 투자은행가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한화이글스 프로야구팀이 안 대표의 첫 직장이 된 사연입니다.
프로야구팬들에겐 안타깝게도 ‘슈퍼스타 안성은 선수’의 꿈은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서울대에 다니던 전도유망한 아들이 춥고 배고픈 프로야구 2군 선수생활을 택한데 대해 집안에서 난리가 났거든요. 결국 안 대표는 프로야구 선수의 꿈을 접고 직장생활을 하게 되는데요, 그곳이 바로 한화이글스의 모기업인 한화그룹 비서실이었답니다. 그러다 MBA를 따기 위해 유학을 가면서 비로소 IB업계와 인연을 맺게 됩니다.
결과만 놓고 보면 IB업계에 투신한 건 잘한 선택으로 보입니다. 성공 가능성이 불투명한 2군 선수 생활도 불사하려 했던 자세 때문일까요. 안 대표는 재기 가능성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던 하이닉스반도체(현 SK하이닉스)의 구조조정을 맡아 자칫 해외로 넘어갈 뻔한 국내 2위 반도체 회사를 살려냅니다.
잘생긴 외모와 훤칠한 키, 점잖은 매너 때문에 안 대표는 IB업계의 대표적인 신사로 불립니다. 경영학과 출신이 대다수인 IB업계에선 드물게 공대(서울대 산업공학과 80학번)출신이란 점은 또다른 반전이지요.
지난해 9년 넘게 몸담았던 뱅크오브아메리카(BoA) 메릴린치 한국대표직을 떠나 도이치은행그룹 대표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는데요. 전통의 IB 강자인 도이치증권이 안 대표의 속구처럼 쭉쭉 뻗어나갈지 기대됩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