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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센터 나이제한에 "40대는 창업하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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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영 IT과학부 기자) “40대는 창업하지 말라는 소리인지…”

“입주 신청하려 했는데 나이를 보고 발길을 돌렸어요.”

아산나눔재단이 서울시 강남구 역삼동에 세운 창업지원센터 ‘마루180’가 문을 열기도 전부터 정보기술(IT) 업계에서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입주기업 모집 조건에 나이제한을 걸었기 때문입니다. 업무에 나이가 중요치 않고, 오히려 청장년층이 섞였을 때 시너지 효과가 커지는 IT업의 속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조건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재단은 5일 재단 홈페이지(www.asan-nanum.org)와 페이스북(www.facebook.com/MARU180ANF)을 통해 새로 지은 창업지원센터 마루180의 입주 모집공고를 냈습니다. 마루180은 구 역삼세무서 사거리에 위치한 건물을 리노베이션한 창업지원센터로, 입주기업은 월 관리비 정도만 내고 공간을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것은 물론 회계·세무 등 경영지원과 멘토링까지 받을 수 있습니다. 입주희망기업은 8일까지 서류를 내면 서류 심사와 발표 심사를 거쳐 선정될 경우 4월 첫주에 입주할 수 있습니다.

재단은 지원할 수 있는 기업의 조건을 내걸었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법인설립 후 3년 이내의 기업 △대표가 만 39세 이하이거나, 만 29세 이하 임직원 비중이 50% 이상인 기업 △직원 수 최대 16인 이하의 기업 △중소기업창업지원법 시행령 제4조에서 정의하는 “창업에서 제외되는 업종”을 영위하지 아니하는 업종의 기업.

이중 두 번째 조건인 ‘대표가 만 39세 이하이거나, 만 29세 이하 임직원 비중이 50% 이상인 기업’을 본 IT 업계 관계자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스타트업 장려 프로그램이 청년실업을 해결하는 일시적 통로가 아니라 실제로 돌아가는 기업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으로 바뀌면 좋겠다”, “스타트업이 마치 젊은 사람들의 전유물 같은 느낌으로 만드는 행사나 지원이 많은 게 사실”이라는 날선 비판이 인터넷에 쏟아진 것은 물론입니다. 한 업계 전문가는 “제조업과 첨단 IT의 조합인 사물인터넷(IoT) 등을 활성화하려면 제조업에서 연륜이 있는 장년층을 일부러 끌어들여도 모자랄 판에, 나이 제한을 걸겠다니 기가 찬다”고 말했습니다.

업계 전문가들의 쓴소리도 이어졌습니다. 한상기 소셜컴퓨팅연구소장은 “대한민국은 39세 이하 창업자만 지원하는구나.. 40세 이상은 각자 알아서 합시다.”는 냉소 섞인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고, 임정욱 스타트업 얼라이언스 센터장은 “이번에 다녀온 이스라엘도 그렇고 나이 많은 창업자가 스타트업을 시작한 사례가 사실 외국에는 수두룩한데 왠지 우리나라에서는 스타트업은 젊은이들의 전유물이라는 선입관이 있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임 센터장은 피플소프트를 창업해 60대가 될 때까지 창업에 나선 ‘데이빗 더필드’를 예로 들며 “실리콘밸리에서 보면 경륜있는 창업자와 젊은 창업자와의 조합도 많다”고 강조했습니다.

대체 39세는 어디서 나온 걸까요. 궁금해서 재단 측에 전화를 걸어 물어봤습니다. 창업기업 관계자로 가장해 재단에 전화를 걸자 “개방된 커뮤니티로 운영할 예정인데, 커뮤니티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비슷한 연령대로 제한을 하게 됐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재단 측 관계자는 “누구나 친구가 될 수 있는 친근한 분위기를 조성하려면 나이가 비슷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고, 마침 중소기업청의 청년창업 기준이 조건과 같이 나와 있어 똑같이 맞췄다”고 했습니다.

“우리 기업은 두 조건 다 맞지 않는데, 지원해도 좋겠느냐”고 묻자 “지원을 한다면 검토는 하겠지만 아무래도 조건을 충족하지 않는 기업은 심사에서 제외될 것”이라고 하네요.

스타트업 지원의 본질을 이해하고 있는지 궁금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행정상 ‘청년 창업’으로만 분류되는 창업만 지원하겠다는 아산나눔재단, 재단의 돈을 들여 창업을 지원하겠다는 취지는 좋지만 한번쯤 창업 지원과 벤처생태계의 참 의미를 되새겨봤으면 좋겠습니다. (끝)

오늘의 신문 - 2024.05.21(화)